
이것은 돼지가 아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1. 작가 신재은의 작업은 진짜와 가짜, 허구와 진실, 현실과 비현실 등의 상이한 가치들이 모호한 경계 아래 갈등하며 이미지와 대상, 언어와 사고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전복시킨다. 그것은 사고의 유영을 허락한 채 지금 현재 바로 이곳을 환기시키는 동시대성과 맞닿는 조형언어를 통해 사회와 환경, 인간 내면을 관통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2012년 시작된 <좋은 곳>은 물론 <호황프로젝트>(2014), <애정운 상승 프로젝트>(2015), <클로버>(2016~) 시리즈 연작, 가이아 프롤로그(GAIA-prologue, 2018~)에 이은 가이아 파트(GAIA-part) 시리즈 모두 동일한 범주에 든다.
그 중에서도 2018년 열린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개인전 <가이아 프롤로그(GAIA-prologue)>는 중요하다. 많은 이들에게 신재은이라는 이름을 알린 전시이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업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의미있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전시에 거대한 햄버거의 단면을 유리에 부착한 <cutting a hamburger>1)를 비롯한 <cutting rubber clay>, <침묵의 탑 pink> 등의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불특정다수가 오가는 야외공간에 마련된 해당전시는 사물에 대한 고정인식을 전면 부정한 채 작품에 대한 대중의 접근방식과 그에 반비례한 예술품의 전복현상을 비튼 수직구조의 전형을 예고한 사례로 꼽힌다.
출품작은 크게 평면과 입체로 나눠진다. 단면의 버거를 내건 <cutting a hamburger>와, 여러 색으로 뭉쳐진 고무찰흙을 역시 단면으로 잘라 높은 좌대 위에 기념비적으로 전시한 <cutting rubber clay>는 사진과 설치작업으로, 매우 건축적인데다 분리된 모든 것들을 통한 익숙함의 생경함, 아는 것에 관한 뜻밖의 심리적 반동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전시에서 단연 눈에 띈 작품은 육중한 지층에 깔린 (핑크색)돼지 사체를 재료로 한 설치작업 <침묵의 탑 pink>이다. 매년 반복되는 돼지 살처분 사건에서 처음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는 <침묵의 탑 pink>는 진짜 자연물이라는 소재자체부터 세간의 화제였으나, 돌과 흙으로 덮힌 육중한 무게감이 물렁한 돼지에게 압력을 가하는 대조적 위치(심지어 관람자들조차 위에서 바라보도록 설치되었는데 그 육중함에 한 몫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야말로 미적의미를 잉태한 조형요소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돼지 사체에서 수습한 뼈와 썩은 냄새, 부패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배태한 흙은 재료의 보편성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감추거나 차단하고 싶은, 혹은 눈에 보여서는 안 될 불편한 것들을 조형화하는 데 있어 주효한 역할을 했다.2) 특히 이미 죽어 몸뚱아리만 남은 돼지를 통한 산발적 질문은 <GAIA>의 관점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인간의 무감각한 전횡을 용인하는 도구화에 관한 자문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작가는 <침묵의 탑 pink>이 지닌 의미에 대해 “돼지는 왜 인간의 부품이 되었을까. 도구로 선택되는 대상의 특징은 무엇인가. 도구화는 자본주의 때문인가. 인간은 과연 이 지구상에서 특별하게 위대하거나 폭력적인가. 인간은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는가.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된 것인가. 무엇이 인간을 위선적으로 만들었나. 나는 왜 인간의 위선에 집중하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결국 ‘위선’이라는 단어로 귀결되긴 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자본주의와 도구화, 폭력과 자유의지라는 키워드는 간과할 수 없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2. 신재은은 ‘<GAIA>를 명제로 한 시리즈를 연속적으로 발표해 왔다. “인간은 지구 순환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k)3)의 주장(지구를 하나의 작은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을 토대로, 인간이 스스로를 존엄한 존재로 격상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위선적인 모습을 묘사하며 전체적 이야기”4)를 전개했다. 본능 그 자체인 대자연 대지와 어머니와 같은 대자연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인간의 목적을 위한 도구처럼 존재하는 돼지(사실상 그가 선택한 모든 자연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위선을 풍자했다.
폐아스팔트에 그리스와 바셀린이 범벅된 대형 작품 <8m>(인천아트플랫폼 발표작)처럼 거대한 스케일과 다소 그로테스크한 시각성, 특유의 비판적 시각 아래 이어진 일련의 시리즈는 가설과 사실, 허구와 실제, 과거의 구조에 새롭게 덧대는 구조 및 관람방식을 통해 새로운 서사구조를 완성한다.5) 그것은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이면서 상상성이 가미된 것이었다. 또한 매우 묵직하며 진중한 위트를 지녔다.
<침묵의 탑 pink>로부터 출발한 가이아 연작은 이후 2019 인천아트플랫폼 개인전(인천아트플랫폼 선정 ‘2019 다시 만나고 싶은 작가’의 일환으로 마련된 전시이다.) ‘GAIA-part1: Inflammation(신체의 한 부분 염증)’6) 전시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이 전시에 2018년 작품인 <침묵의 탑 pink>를 미니어처로 제작한 뒤 검은색 원형작품 <Black Fountain>를 앉혔다.
사실상 이 전시에서 동선은 상호성을 갖는 동시대미술에서 눈여겨 봐야할 부분으로, 전시 관람객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이동하는 구조였고, 작가에 의하면 이 레드카펫은 미니어처 돼지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었다. 때문에 돼지피 위에 놓인 관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위계의 상위에 섰다.7)
레드카펫 끝자락에 자리잡은 <Black Fountain>은 제목처럼 석유를 연상케하는 미끈하고 끈적한 느낌의 검은 액체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검은 분수 모습을 했다. 이 작업은 “정제된 석유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석유화학제품 페인트로 전환되어 인간의 포근하고 따뜻한 울타리, 단정하게 마감된 생활 환경을 위해 소비되는 상치된 상황”8)과 관련이 있다. 인간 편의를 위해 채굴되고 상품화되는 석유에서 착안된 이 작업은 다시 말해 인간의 착취9)와 무관하지 않다.
<Black Fountain> 근처에는 아크릴에 투명오일, 붉은색 안료와 물이 섞인 <Pure>가 설치됐다. 검은 분수의 석유가 상품화를 위해 채굴되고 정제되는 과정을 설명하듯 1층에서부터 2층 전시장까지 대롱으로 연결된 상층에는 맑은 물과 붉은 물을 농도의 단계로 변화하는 장면을 넣었다.
이때 관람객은 2층으로 이어진 작품을 따라 오르는 과정에서 2층 벽면이 모두 돼지의 피부색을 연상시키는(그러면서 페인트로 상품화된 돼지에 둘러싸인 풍경과 관객들 사이의 거리를 벌려 타자화된 대상을 관조하도록 의도된) 핑크 베이지색으로 도배된 텅빈 풍경인 <Pink Room>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그 벽면 중앙에 뚫린 작은 구멍에선 살처분당하는 돼지들의 나지막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전시장 한쪽에는 2층 높이 벽 상단에서 1층 바닥으로 돼지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 작품 <Falling pigs>가 상영됐다.
사진 자료 외, 전시를 관람하지 못한 필자는 작가의 묘사를 빌려올 수밖에 없는데, 신재은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작가노트에 적었다. “(…)구멍이 뚫린 벽면은 전시장의 1층과 2층에 걸쳐 연결되어있는 하나의 거대한 벽으로, 구멍 뚫린 벽의 뒷면에서는 2층에서 1층으로 추락하는 돼지들처럼 표현된 영상이 프로젝팅되었다. (…) 1층으로 추락한 돼지들은 다시 1층의 레드카펫으로 연결되고 레드카펫의 종착지에 놓여진 작품 <Black Fountain>으로 흘러가면서 전시 공간 상 하나의 거대한 순환고리를 형성하려 했다.”
작가의 의도는 적절히 구현됐을 것으로 보인다. 관객의 시선을 이동시키는 여러 장치를 통해 시대성을 건드리며 자연을 포함한 인간 환경의 문제 등, 인간 삶에 놓인 인류공통의 사안과 인간 자체의 내면성, 대상화된 인간의 장면들을 모두 포괄내지는 담아내고 있다 판단되기 때문이다.
3.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개인전 출품작인 2020년 ‘GAIA part2: White’는 깨끗하고 하얀 전시공간에 <이상한 꿈>을 설치했다. <이상한 꿈>은 행거처럼 생긴 거대한 틀에 붉은 피주머니를 매단 작품으로, 실제 접한 이 피주머니는 마치 괴상한 덩어리 형태로 천장에 매달려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신을 감싸고 있던 거죽을 찢고 나오는 영화 속 에이리언의 알처럼 생겼는데, 후각까지 미적으로 차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돼지피는 심하게 부패했고,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하고도 견디기 힘든 악취를 발생시켰다.(썩은 돼지피 냄새는 일상에선 좀처럼 맡을 수 없는 묘한 역겨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마냥 코를 막거나 고개를 돌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청결함과 불결함, 인공과 자연, 정적인 무색무취와 부패하며 변화하는 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해지는 악취 등을 대비시켜 이상적인 이념 윤리 도덕과 같은 대의명분에 집착하는, 즉 위선의 전조증을 표현10)하기 위해선 시각과 후각의 고통은 반드시 거쳐야할 단계였던 탓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한번쯤 고민해봐야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음에도 <이상한 꿈>은 여러 이유로 미완으로 남았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를 고려하면)<이상한 꿈>은 ‘꿈’으로만 그치고 말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작가는 본래 <이상한 꿈>에 구멍을 낸 후 전시장에서 터트리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작품의 방점일 수 있는 행위이므로 무엇이 문제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피로 물든 공간을 청소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불결한 냄새에 의한 타인의 고통, 공용공간이라는 장소적 특성 등을 우려한 만류가 많았다. 결국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시장에서 피주머니를 터뜨리는 행위를 할 수 없었다. 작가도 필자도 아쉬움이 컸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개인전에는 <이상한 꿈> 외에도 윈도우 갤러리에 생 돼지 뇌를 설치한 작품 <White Out>을 내걸었다. 원래는 뼈속에 있어야 할 뇌가 본래의 자리에서 이탈한 채 빛을 받는 시간에 비례해 점점 쪼그라들었다.(나중엔 아이 주먹도 안 될 정도로 작아졌다)
<White Out> 역시 <이상한 꿈>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선의 전조증상’을 가리키는 또 다른 버전이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어째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위선적인가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고 명료히 말한다. “부자연스럽게 빛을 바라보며 ‘번식하고 생존하라’는 모든 생명체를 향한 대자연의 지상 명령을 망각해버린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재은의 근작이자 아시아문화의전당 ‘공감본능’ 전(4.16~5.23)에 출품된 2021년 작 <머리, 어깨, 무릎, 발>11)은 외부로 드러난 공간과 내부 공간이 대비되는 상황을 영상 복합 설치 방식으로 다뤘다. 4개의 수직 면으로 구성된 작은 사각 울타리 형태의 이 작품은 부패하고 위선적인 우리에 관한 시선이자 자의식과 관계가 깊다.
넓직한 패널에서 토해내는 다짐육, 거울, 모니터 그리고 거울과 동일한 크기의 분할된 4개의 모니터에서 상영되는 돼지의 머리, 어깨, 무릎, 발 부위12)는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우리의 자의식과 연결된다. 그런 자의식을 가진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비교 대상으로 위치하면서 거울 뒤에 숨어있는 세계와 마주한다.13) 작가도 “<머리, 어깨, 무릎, 발>은 작품과 관객 사이의 공간 폭을 좁혀 (인간도)고깃덩이와 동일시되는 경험을 주려했다.”며 “위선의 씨앗인 ‘나는 다르다.’라는 사고의 틀을 지워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도구화된 존재로 이용되는 돼지가 나와 다른 무엇이 아니며, 타자로 치부하지만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략 살펴본 신재은의 작업은 대체로 현실을 배척하지 않는다. 나와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면서 신재은의 예술성을 보좌하는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가정된 이야기임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론적 토대는 무시하기 어려울뿐더러, 일련의 작업들은 분명 왜곡되거나 비튼 것이고, 극단적 과장과 왜곡, 부조리를 통한 비화해적 대립, 괴리, 갈등으로부터 태어난 부재의 존재 이유 등을 묻는 것임에도 관념으론 해석되지 않는 무의미, 무목적적인 상황을 의미적으로 혹은 목적적 가치와 함께 부정할 수 없는 공감대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여회가 넘는 그의 개인전은 그 공감대에 있어 불충분하지 않은 근거를 제시한다.
4. 신재은의 작업은 작금의 상황과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은 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고민해야할 현상에 관한 옳고 그름이 명료하게 내재되어 있다. 2012년의 <좋은 곳> 이후 지난 10여년 간 한결같이 그랬다.
예를 들어 2017년 서울예술재단 포트폴리오 리뷰 선정작가로 참여하여 출품한 <도시의 산>은 대량생산과 대량생산 구조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이면을 온갖 폐기물로 상징화한 작업이다. 2018년 <클로버> 연작 중 하나인 <도시의 흙>14) 또한 기형 클로버가 상당수 자생하는 도시의 역전된 상황을 대형 설치로 보여준 작업이다.
부평구문화재단 선정작가전으로 진행된 2018년 신재은 작가의 10번째 개인전인 <가이아, 토끼가 뛰는 언덕>도 마찬가지이다. 작가 특유의 냉정한 시각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가운데 <가이아, 토끼가 뛰는 언덕>은 동일공동체의 내적 상황을 관통한다.
과거 평론에서도 적시한바있지만 그는 해당 전시에 어쩌면 미시적일 수 있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미술계의 (무비판적)트렌드’를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무언가 약삭빠른 듯 어리석은 느낌의 ‘토끼’라는 동물이 지닌 상징성에 작가의 체감을 재치있게(그러나 다소 싸늘한) 투사한 방식 또한 인상적이었으나 작가 스스로 밝혔듯 무엇보다 “극단적인 과장과 왜곡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비꼬는 작업”을 전개해왔던 지난 작업 특유의 시니컬함이 해당 전시의 백미였다.
당시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2개다. 하나는 토끼 이미지를 내세운 미디어아트 <Hop Hop>과, 두 대의 복사기를 설치한 <Ce n'est pas un travail>이다. 이 가운데 수백-수천마리의 토끼가 한 방향을 향해 줄달음치는 장면을 재현한 영상작품 <Hop Hop>은 단순한 구성을 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생각해볼 거리는 단순하지 않다.15)
작가에 따르면 이 작업은 “스타일이 비슷한 한국의 근래 미술 작품들의 이미지를 모방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가 현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획일화된 감성을 드러내고 비튼다.”16) 즉, 르네상스시대도 아니건만 여전히 횡행하는 주문형 작품생산구조와 그에 스스럼없이 종속된 채 상업시스템에 순응해온 작가들의 오늘을 보여주고, 궁극적으론 ‘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그것이 함의하는 상업성에 대한 비판17)까지 녹아 있다는 게 특징이다.
신재은은 이와 같은 한국미술계의 단면을 <Hop Hop>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황을 ‘감성 복제 증후군’18)이라 이름 붙였다. 서로 복제되어 어디서 본 듯하고 왠지 익숙한 무언가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작가의 뭉툭하지 않은 시선이다.
신재은의 2019년 플레이스막 인천 개인전 <CRUSTAISM>19)은 존재의 우월성에 관한 작가의 시니컬함이 돋보이는 전시로 꼽힌다. 눈, 코 없이 가죽이 벗겨진 토끼 6마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 전시에서 작가는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가 굴로 들어가며 손짓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시작으로, 부패가 진행 중인 토끼를 레진으로 감싼 작업까지, 세상의 허구성과 참다움은 다시 한 번 면밀한 작가의 논리 아래 껍데기와 속살의 구분 및 인공과 실제의 차이, 가상과 현실에 대해 질문한다.
흥미롭게도 그 질문 내에는 “위치에 따른 상하 개념 대립과 유기적인 관계를 시각화 하기 위한 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관람 동선에 따른 작품 배치 순서, 관람자의 관람 시점” 등이 배어 있다.
특히 시각조형을 위한 남다른 시나리오를 통해 새로운 사유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놀라우리만치 치밀하고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는 이 시나리오는 그의 작품이 우연이 아닌 체계적으로 누적된 레퍼런스이자 즉흥적이지 않은 논리와 질서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시각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사유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단초로서도 기능한다. 기회가 된다면 필독을 권한다.
1) 재밌게도 작가는 전시 오픈날, 반으로 잘린 돼지불고기 버거를 관객들이 섭취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2) 흥미롭게도 그 매립에는 쓰레기나 생산 체계에서 버려진 것들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은폐된 것들까지 모두 들어 있었고, 돼지를 누르고 있는 거대한 지층은 억압하는 가해자와 짓눌린 피해자라는 양가적 기호로 자리했다.
3) 가이아이론을 창시한 영국의 화학자겸 의학자, 생물물리학자이다. 1979년에 출간한 저서 《가이아: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Gaia: A New Look at Life on Earth)》의 저자인 그는 살아 있는 유기체인 지구에다 새로운 이름을 붙였는데, 그것이 가이아(Gaia)다.
4) 작가노트 중
5) 이는 이른바 신재은 식 조형 체계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 중요하게 기능했다.
6) 제목 <Inflammation>(염증)은 빈곤 혹은 질병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 으로 묘사하는 ‘빈곤 포르노’ 혹은 ‘감동 포르노’와 같이 겉이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으나 실상은 타자의 고통이 사회적 재화나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이 염증과도 같은 현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인간 본연의 이기성과 위선을 포착하고, 이를 땅 아래 퇴적물로부터 얻어지는 석유의 생산 과정에 비유했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발생된 염증이 땅을 비집고 나오면서 자연의 질서에 의해 스스로 치유되려 했지만 또 다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부자연스러운 인공 질서에 편승되어 염증이 인간의 도구로 사용되는 과정을 전시가 열린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의 구조와 동선을 활용하여 시각화했다.
7) 앞서 거론한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에서 선보인 <침묵의 탑 pink>도 포함된다.
8) 작가노트 중.
9) 석유를 원료로 하는 것들 중 다수는 인간편의를 위해 가공된 것이지만 자연환경시스템의 3대 요소인 공기, 물, 땅에 위해한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석유가 연소되는 과정에서 다량 배출되는 일산화탄소는 뇌 조직과 신경계통에 손상을 준다.
10) 작가노트 중.
11) 작가는 <머리, 어깨, 무릎, 발>이라는 제목을 작사 미상의 초등학교 교과서 동요 ‘머리, 어깨, 무릎, 발’에서 차용했다고 밝혔다. 또한 “스스로의 신체를 자각하고 자의식을 습득하기 위한 어린이들의 노랫말이 인간과 동물의 구분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12) 다짐육 기기(민서기)의 구멍을 통해 형체없는 덩어리로 배출되고 있다.
13) 관객들은 이 울타리 내부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관객은 사방이 민서기의 모터 작동 소리와 함께 점액질의 덩어리로 분열되어 화면을 채우고 있는 베이지 핑크빛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무작위적으로 배출되는 고기덩어리는 관객의 자의식 상실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무아의 상태에서 관객은 돼지고기 덩어리와 일체된다.
14) 이 작업에 대해 작가는 “도시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화단과 공원에서 네 잎 클로버를 빈번하게 발견했던 경험에서 시작된 작업이다.”고 말한다. 그는 “주로 오염된 지역의 산성화 된 토양과 과잉 광합성으로 인해 클로버에 기형이 발생하기에 도시화된 지역, 24시간 불빛이 꺼지지 않는 가로등 아래에서 네 잎 클로버가 확연하게 많이 발견 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오염된 공간이 행운 가득한 공간으로 역전되는 상황 때문이다.”고 작가노트에 덧붙이고 있다.
15)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장 풍경을 설명하자면, 일단 전시장엔 영상과 함께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육성이 일종의 내레이션으로 송출되고, 화면 속 토끼들은 잠시 멈추다 뛰기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육성과 토끼는 교차하듯 상이한 채 전시공간을 부유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6) 비판의 끝자락엔 부정할 수 없는 작금의 양태가 부유한다. 예를 들면, 서구 유럽의 특정 국가에서 유학한 작가들의 작품은 그 나라의 형식과 유사한 표현방식을 지니며, 한국에서 인기 있다 싶은 조형방법론은 1-2년 내 대표적인 표현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한마디로 “분명히 작가가 다르고 주제도 다른데 결과물이 비슷해서 한 사람의 작품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몇몇 기획자와 갤러리에서 대중들이 좋아할 법한 예쁜 작업을 전시해 줄 것을 노골적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요청받은 것에서 발생한 ‘예쁜 작업’이란 무엇인가라는 내면의 질문과 고민, 그리고 예쁜 작업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17) 그 작품들은 예술가의 책무인 사회적 역할과 의사로써의 무게와는 거리가 있다. 마치 잘 뽑아낸 디자인 같고 문방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팬시상품과 별다르지 않다. 그저 하나같이 대중 취향에 읍소하며 귀엽고 예쁘니 부디 나를 사달라고 교태부리는 것에 멈추기 일쑤다.
18) 작가는 이에 대한 공통점으로 다음과 같이 예를 든다, “본인이 느끼는 공통점들은 미디어 작업과 설치 작업의 혼재, 3D 그래픽 이미지, 비비드하고 밝은 알록달록한 컬러, 그라데이션된 색상 표현, 우주 이미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 크로마키 기법을 사용한 B급 콜라주 영상 편집, 내용이 없거나 가볍고 쿨한 느낌, 아기자기함, 색감과 형태, 디자인만 강조되어 마치 굿즈 제작을 위해 만들어지거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으로 남기기 좋도록 꾸며진 작업 등이다.”
19) ‘CRUSTAISM’은 각피를 뜻하는 crusta와 어떤 상태를 지정하는 접미사 ism을 결합시킨 신조어다.
위 글은 2020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