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의 탑 Pink
Silence Tower, Pink
흙, 시멘트, 아스팔트, 죽은 돼지, 돼지 불고기 햄버거, 320 × 85 × 85 cm, 2018
soil, cement, asphalt, dead pig, pork bulgogi hamburgers, 320 × 85 × 85 cm, 2018



《GAIA–Prologue》 전시의 중심부에 설치된 조형물로, 전시장 외벽의 윈도우 갤러리 내부, 관객의 시선으로부터 가려진 심부에 배치된 육중한 지층탑이다. 관객은 이 탑을 정면에서 마주하지 못하고, 햄버거 단면 사진작업 〈Cutting a Hamburger〉를 본 뒤 윈도우 외벽의 계단을 따라 한 층 위로 올라가야만 탑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조우할 수 있다. 이 시선의 구조 자체가 내가 의도적으로 구축한 위계, 거리감, 지각의 장치다.
탑은 본인이 직접 흙을 발로 구르고 다져 한 층 한 층 쌓아올린 ‘인공 지층 구조’이다. 가장 하단부에는 실제 돼지 사체가 묻혀 있으며, 그 위로는 흙이 켜켜이 쌓이고, 탑의 최상단은 도시의 지면을 상징하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여 있다.
At the center of the exhibition GAIA–Prologue stood a massive stratified tower installed deep within the window gallery—positioned behind the exterior wall of the exhibition space, hidden from the viewer’s direct gaze.
The audience could not face the tower frontally; only after viewing the photographic work Cutting a Hamburger on the window’s outer façade and climbing the staircase along the wall could they encounter the tower from above, looking down upon it.
This spatial arrangement itself was a deliberate construction of hierarchy, distance, and perception—a mechanism of gaze that I intentionally designed.
The tower is an artificial stratigraphic structure that I built by repeatedly treading and compacting layers of soil with my own feet.
At its base lies the body of a real pig, buried beneath successive layers of earth, while the topmost surface is sealed with cement and asphalt—materials that evoke the ground of the modern city.

이 탑의 높이는 2층 난간에 서 있는 관객의 발 높이와 같도록 설계되어, 관객이 자신의 발 아래 도시 땅 속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듯한 시각적 착각을 유도한다. 사체는 3m 아래 불투명한 흙에 절반쯤 묻혀 있었고, 완전히 드러나지 않도록 연출되어 있어, 관객들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즉 사체인지 조형물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많은 관객들이 “설마 진짜겠어?” “가짜일 거야”라며 감각과 인식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러나 한 무리의 어린이 관객 중 한 아이는 “저건 진짜야. 파리가 있잖아.”라고 말했고, 냄새와 곤충이라는 ‘자연의 반응’을 통해 진실을 감각한 순간은, GAIA 시리즈 전체가 질문하는 감각적 통찰의 상징이 되었다.
작품 앞 2층 난간 쪽에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시중에 판매되는 돼지 불고기 버거를 반으로 절단하여 탑의 지층과 버거의 레이어가 중첩되도록 배치했다. 햄버거를 먹던 관객들은 탑 아래의 돼지 사체를 내려다보며 먹던 햄버거를 내려놓거나, 끝까지 먹는 반응이 나뉘었다. 이 반응의 분기는 내가 의도한 양가적 감각의 한 단면이다. 죽은 동물, 인간의 소비, 포식의 구조는 이미 강한 윤리적 의미를 띠지만, 나는 그것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하나의 장면처럼 놓아둔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가축을 기르고 때로는 잔혹하게 처리하는 이 모든 시스템 역시 자연의 순환 속에 있다. 그것이 옳거나 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잔혹한 인간도, 슬퍼하는 인간도, 무참히 죽은 돼지도,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도 모두 같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감각하게 하고자 했다.
이 구조는 단순한 시야 연출이 아니라, 내가 감정을 즉시 분출하지 않고 안전한 거리 속에 봉인했던 초기 작업 태도의 구현이었다. 관객이 돼지를 완전히 확인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죽음과 소비, 현실과 이미지를 하나의 장면 속에 두면서도 가치판단을 보류하는 ‘면역적 무심’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 장치는 잔혹함과 일상성, 혐오와 익숙함이 한 화면에 공존하게 함으로써, 자연과 자연 아닌 것의 경계를 흐리고, 감정과 소비가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실제 삽입된 돼지는 공간과 위생상의 이유로 전시 하루 만에 철수되었으며, 그 빈자리는 돼지 뼈 무더기가 섞인 흙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작품의 구조는 그대로 남았고, 그 안에 있었던 실체의 부재는 오히려 ‘실재했으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둘러싼 감정의 공백을 더 크게 만들었다. 이 공백은 GAIA 초창기의 ‘감정 밀봉기’와 맞닿아 있으며, 이후 감정의 균열과 침투로 이어지는 시리즈 전체 흐름의 첫 출발점이 되었다.
The tower was designed so that its height aligned with the level of the viewers’ feet as they stood on the second-floor balcony, creating the illusion that they were gazing deep into the ground beneath the city.
A pig’s body was buried about three meters below, half-concealed within opaque soil, so it was impossible to tell whether what the viewers saw was real or fabricated—a corpse or a sculptural replica. Many wavered between perception and belief, murmuring, “It can’t be real,” or “Maybe it is.”
Then, among a group of children, one pointed and said, “It’s real. There are flies.”
That moment—when truth was sensed not through vision but through smell and the movement of insects—became emblematic of the kind of perceptual awareness that defines the GAIA series.
A table was placed near the second-floor balcony, on which a store-bought pork bulgogi hamburger was cut in half so that its cross-section echoed the stratified layers of the tower. Viewers who were eating the burger while looking down at the buried pig reacted in two ways: some stopped eating and set their food aside, while others kept eating until the end. This split embodied the ambivalence I intended—the simultaneous coexistence of empathy and detachment, revulsion and indifference.
The dead animal, human consumption, and the structure of predation all carry strong ethical undertones, yet I neither accuse nor justify them. I simply set them side by side as part of a single scene. Humans are part of nature, and so are the systems we construct—raising, processing, and consuming animals. This does not make them right or wrong; rather, it reminds us that the cruel, the grieving, the slaughtered, and the observing all exist within the same natural continuum.
This spatial composition was more than a visual device; it embodied my early working attitude—a tendency to contain emotion within a controlled distance rather than release it immediately.
By preventing the viewers from fully confirming the body, I sought to preserve a kind of immunized detachment—a suspended state of judgment in which death, consumption, reality, and image could coexist within the same frame.
Through this restraint, cruelty and routine, disgust and familiarity were allowed to coexist, blurring the boundaries between the natural and the unnatural, between emotion and consumption.
The pig placed within the structure was removed after one day due to spatial and sanitary concerns, and the cavity was refilled with soil mixed with pig bones. Yet the structure remained intact.
The absence of what had once been there created an even deeper emotional void—a presence felt through its disappearance. That void marked the beginning of what I later called the period of emotional sealing in the early GAIA works, a state that would eventually fracture and give way to the fissures and infiltrations that define the later phases of the series.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였다.
We Were Brothers Who Shared Blood
벽에 펜, 텍스트, 가변 설치, 2018
pen on wall, text, variable installation, 2018


전시의 마지막 동선, 출구 벽면에 연필로 가볍게, 마치 메모처럼 적어둔 한 문장의 설치 작업이다. 전시 내내 죽은 돼지, 지층탑, 햄버거 단면, 부패와 소비를 조형적으로 구성한 후, 나는 전시장 마지막 구간에 극도로 간결한 이 문장 하나만을 남겼다. 관객은 전시를 다 보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이 문장을 마주하게 되며, 전체 작업의 정조를 재해석하거나, 예상치 못한 감정적 뒤틀림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였다.”
이 문장은 무겁고 진지한 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무겁기 때문에 가짜처럼, 혹은 진심이 과장된 블랙코미디처럼 읽히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피를 나눈 형제’는 혈연적 유대와 끊을 수 없는 친밀함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보다 훨씬 넓다. 돼지, 개, 고양이, 사람, 꽃뿐 아니라 플라스틱, 해충, 박테리아까지 모든 것은 순환과 물질 교환 속에 서로의 일부가 된다. 이 문장은 그런 전체적 얽힘을 은유하는 선언이었다.
prologe 발표 당시, 관객은 전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이 문장을 보았다. 그들은 전시장 초입의 햄버거 단면 이미지, 지층탑, 돼지 사체, 먹는 행위, 부패와 같은 모든 장면들을 역순으로 되감으며, 자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했는지를 되묻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5년 후, 《GAIA–소화계》를 마주한 일부 관객들은 이 문장을 다시 떠올렸을 것이다. 스티로폼을 먹은 밀웜을 먹은 닭을 먹은 인간의 장면 속에서, 프롤로그의 ‘형제’가 의미했던 것이, 돼지와 나, 나와 관객,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전체가 서로를 거쳐 한 몸이 되는 상태였음을 뒤늦게 연결했을 것이다.
이 문장은 나와 돼지, 인간과 동물,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동시에 흐리는 은유다. ‘형제’라는 단어 속에는 피와 살의 물질적 공유, 감정적 교감, 그리고 포식의 잔혹함까지 함께 들어 있다. 나는 이 문장을 통해 GAIA 시리즈의 핵심 태도, 즉 선악과 위계를 넘어서는 ‘중립적 무심’을 언어로 구현하고자 했다.
At the final point of the exhibition route—on the wall beside the exit—one short sentence was written lightly in pencil, as if it were a casual note.
After composing an entire exhibition around the dead pig, the stratified tower, the hamburger cross-section, and the visual language of decay and consumption, I chose to end it with this single, restrained line.
Visitors encountered it on their way out, often after a long silence, and the simplicity of the phrase invited them to reinterpret the tone of the whole exhibition—or to experience an unexpected emotional dissonance.
“We were brothers who shared blood.”
The sentence sounds solemn and weighty, almost like a declaration.
Yet precisely because it is so heavy, it also reads as something suspiciously exaggerated—perhaps even absurd, like a deadpan joke disguised as sincerity.
Ordinarily, “brothers who share blood” refers to kinship or unbreakable intimacy.
Here, however, we extends far beyond human boundaries.
Pigs, dogs, cats, humans, flowers, plastics, insects, and bacteria—all are bound together through cycles of exchange, digestion, and decay.
The phrase was, in that sense, a declaration of entanglement.
When GAIA–Prologue was first presented, visitors saw this line as they exited.
Walking back through the exhibition in reverse—past the hamburger cross-section, the soil tower, the pig’s body, the acts of eating and decomposition—they inevitably confronted what they had seen, ignored, or consumed.
Five years later, some who encountered GAIA–Digestive System recalled that same sentence.
In the scene of humans eating the chicken that had eaten the mealworms that had eaten Styrofoam, the “brotherhood” of the Prologue revealed its deeper meaning: that the pig and I, the artist and the viewer, the human and the non-human, are all parts of one continuous body—passing through one another.
The phrase blurs every boundary—between self and other, human and animal, nature and artifice.
Within the word brother lies not only the material sharing of blood and flesh, but also empathy, consumption, and cruelty intertwined.
Through this single sentence, I sought to articulate the core ethos of the GAIA series: a state of neutral indifference that transcends moral hierarchy and sentimental bias.
Cutting a Hamburger
PET에 디지털 프린트, 2018
Digital print on PET, 2018



전시의 도입부이자, 도심 광장의 다중이 이용하는 공간에 위치한 윈도우 갤러리 외벽에 설치된 대형 사진작업이다. 광장 한복판에 위치한 이 윈도우 갤러리는누구나 전시장을 지나치며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구조이고, 나는 그 점을 활용해 불특정 다수가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친숙한 시각 언어를 전면에 배치했다.
작품은 햄버거 단면을 정밀하게 촬영한 대형 광고 이미지 형식의 사진이다. 광고의 시각 언어를 차용해 제작된 이 이미지는 햄버거를 반으로 잘라 내부를 정밀하게 드러내는 ‘단면’ 이미지로, 형형색색의 층위와 가공된 미감을 강조한다. 겉으로는 친근하고 팝적인 이미지지만, 이 단면은 전시장의 구조적 장치와 맞물려 그 안쪽에 숨겨진 진실을 감추는 ‘시선 분산의 전술’로 작동한다.
〈Cutting a Hamburger〉는 관객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시각적 입구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 바로 너머, 윈도우 갤러리 내부 공간에는 실제 돼지 사체를 흙 속에 봉인해 설치한 〈침묵의 탑 Pink〉가 은폐되어 있다.
햄버거 단면과 돼지 사체.
가공된 이미지와 실체.
소비된 흔적과 버려진 몸.
이 작품은 그 둘 사이의 극단적 거리를 팝적인 시각 언어로 가볍게 열어두고, 무거운 조형 언어를 감춘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가장 본질에서 멀리 떨어진 층에 존재한다. 햄버거는 친숙하고, 돼지의 몸은 멀다.
이미지는 밝고, 사체는 어둡다.
단면은 평평하고, 탑은 깊다.
그러나 그 모든 감각적 대비는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외면하는가?’
〈Cutting a Hamburger〉는 단지 ‘햄버거를 자른 이미지’가 아니라, GAIA 시리즈의 핵심 구조인 소비와 은폐, 감각과 구조, 위계와 감정을 가장 압축적이면서도 일상적으로 제시하는 출발점이다.
그것은 전시의 문이자 함정이며, 가벼운 유혹이자 무거운 복선이다. 이 작품을 지나치며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웃음 너머에는, 한 겹 더 깊은 침묵의 층이 숨어 있다.
Installed on the outer façade of the window gallery—a transparent structure located at the center of an urban plaza and visible to countless passersby—this large-scale photographic work functions as the entrance to the exhibition. Because the space is encountered naturally by anyone walking through the square, I placed here an image built from a language of easy visual consumption, something instantly familiar to the public eye.
The work presents a meticulously photographed cross-section of a hamburger, printed at an advertising scale. Borrowing the seductive syntax of commercial imagery, it reveals the burger’s colorful layers and processed textures in hyper-real detail. On the surface, the image feels friendly and pop-like, yet within the spatial structure of the exhibition, it operates as a tactic of distraction—a bright façade concealing a darker reality hidden just beyond the wall.
Cutting a Hamburger is the first visual threshold that captures the viewer’s attention. But immediately behind this glossy image—inside the window gallery itself—lies Silence Tower, Pink, where an actual pig carcass is buried within a mound of soil.
The hamburger cross-section and the buried body.
The processed image and the raw flesh.
The trace of consumption and the discarded form.
This work lightly opens the extreme gap between the two, masking the heavy with the language of the light. Positioned in the most accessible and public layer of the exhibition, it paradoxically exists farthest from its core.
The hamburger is familiar; the pig’s body is distant.
The image is bright; the carcass is dark.
The slice is flat; the tower is deep.
Yet every sensory contrast folds into a single question:
“What do we consume, and what do we choose not to see?”
Cutting a Hamburger is more than an image of a sliced burger. It establishes the foundational structure of the GAIA series—consumption and concealment, sensation and system, hierarchy and emotion—compressed into one everyday form.
It is both entrance and trap, a light invitation and a heavy foreshadowing. One may smile while passing it by, but beyond that smile lies a deeper, quieter layer of silence.
Cutting Rubber Clay
고무찰흙, 8× 8 ×4 cm, 2018
Cutting Rubber, 8× 8 ×4 cm, 2018

전시 도입부에서 햄버거 단면 사진작업 〈Cutting a Hamburger〉와 실제 돼지 사체가 삽입된 〈침묵의 탑 Pink〉 사이, 계단 쪽 중간 윈도우 공간에 설치된 소형 조형작업이다. 나는 문방구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컬러 고무 찰흙을 지층처럼 켜켜이 쌓은 뒤, 그 중앙을 햄버거처럼 칼로 갈라 알록달록한 단면이 드러나도록 연출했다.
사이즈는 주먹보다 작고, 별다른 조명이나 연출 없이 작은 좌대 위에 가볍게 올려져 있다. 이 작업은 그 자체로 ‘지층의 농담’, ‘햄버거의 패러디’, ‘탑의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관객은 이전에 마주한 거대한 햄버거 이미지, 그리고 이어질 육중한 탑과 실재의 무게 사이에서 이 작은 찰흙 덩어리를 마주하게 된다.
너무 작고, 너무 가볍고, 너무 우스워서 잠시 진지함을 잊게 만드는 조각, GAIA 시리즈 전체의 밀도를 고의로 이완시키는 장치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전시 흐름 속에서 결정적 기능을 수행한다.
〈Cutting Rubber Clay〉는 전시 공간 내에서 의도적으로 설정된 ‘완충 지층’이다. 햄버거는 이미지였고, 이 찰흙은 가짜 지층이다. 둘 다 ‘가볍게 잘라본 단면’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진짜 지층처럼 쌓인 흙과, 진짜 죽음이 묻힌 탑이 기다리고 있다. 이 가벼운 조형물은 앞서 본 이미지와 이후 마주하게 될 실재 사이에서 관객의 감각을 잠시 ‘속인다’. 무게를 잠시 덜어내어, 진실의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든다.
Positioned between the photographic work Cutting a Hamburger at the exhibition’s entrance and the buried-pig installation Silence Tower, Pink, this small sculptural piece occupied the middle window space along the staircase.
For the work, I used inexpensive colored rubber clay—the kind easily found in stationery shops—layering it like geological strata. I then sliced the mass cleanly in half, revealing a bright, hamburger-like cross-section of stacked colors.
The sculpture is smaller than a fist, displayed casually on a low plinth without lighting or dramatic staging. It looks like a joke of strata, a parody of the hamburger, or a miniature of the tower.
Viewers encounter it between two extremes—the monumental, hyper-real hamburger image they’ve just seen and the heavy, soil-buried tower that awaits above. The work is so tiny, so light, and so absurd that it briefly disarms the viewer’s seriousness, softening the density of the GAIA series on purpose. Yet precisely in that lightness lies its function within the exhibition’s rhythm.
Cutting Rubber Clay operates as a buffer layer within the spatial sequence. The hamburger was an image; this clay is an imitation of strata. Both are “lightly sliced cross-sections.”
But behind them lies the true stratification of earth—and real death—within the tower.
This playful object momentarily deceives the viewer’s senses, lifting the weight only to make the next encounter heavi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