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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의 기록집
Records of Blankness

작가는 2025년, 장례지도사로 활동하며 인간의 마지막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본 텍스트는 죽음을 목도한 한 인간으로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고통 회로를 예리하게 집어 올리려는 자기 해부 기록이다.

작가는 관찰자이자 죽음을 다루는 자로서 '무표정'을 유지하려 시도하지만, 죽은 자의 팔에 새겨진 타투의 탐미적 아름다움, 뻣뻣한 수의가 피부에 닿는 물리적 통증, 그리고 죽음의 공간을 침범하는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로부터 두려움과 설렘, 질투와 무감각이라는 감정의 늪으로 끌려들어가며, 감정에 스스로 물리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는 피식자의 위치로 떠밀린다.

“감정에 먹히는 나를 관찰하겠다”는 주체적 선언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입속에서 “오래오래 씹히고 있었다”는 피식자의 실존적 고백으로 전치된다.

In 2025, the artist confronts the finality of human existence firsthand while working as a mortician. This text is a "self-dissection record" an attempt to sharply pinpoint the ‘emotional pain circuits’ arising within a human being upon witnessing death.

While attempting to maintain an 'expressionless' facade as an observer and a handler of death, the artist is pulled into a swamp of fear, excitement, jealousy, and numbness—by the aesthetic beauty of a tattoo etched on a deceased arm, the physical pain of stiff burial shrouds brushing against the skin, and the scent of luxury perfume invading the space of death. They find themselves pushed into the position of the prey, repeatedly bitten by emotions and trying to flee.

The subjective declaration, “I will observe myself being consumed by emotions,” is transposed into an existential confession of the prey: “I was being chewed for a long, long time” within the massive maw of death.

한 매

감정에 먹히는 나를 관찰하기 위해

이 기록을 시작한다.

2024년, 하나의 일을 정리했다.

무언가 끝나버린 그 허전함 속에서

재취업 교육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무료한 직업 소개 슬라이드 화면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장례지도사.

수입, 정년, 안정성 같은 정보는 귓등으로 흘렀다.

내게 중요했던 건 인간의 형상을 간직한 마지막 모습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작점,

그 경계에서 배웅하고 맞이하는 일의 의미였다.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이 직업에 끌리고 있었다.

결심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곧바로 신청하지는 못했다.

이미 작업 스케줄이 빼곡했고,

나는 남은 2024년을 먼저 마무리하기로 했다.

실행이 미뤄지자 쓸데 없는 걱정들이 밀려왔다.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내 삶마저 죽음에 물들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음.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매일 생각하는 일은 현실이 된다는 말 때문이다.

아니, 이 말은 그저 미신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지으며,

미신이라 말해야 정말 미신이 될 거라 또다시 믿는다.

이쯤에서 그만. 머릿속을 비우자.

하지만 비우려는 순간 더 선명해지는 상상.

아.

안돼.

생각에 대한 생각은 늪처럼 질척이며 나를 삼켜갔다.

그런데 막상 교육 신청 시기가 오자 망설임이 사라졌다.

나는 바로 움직였다.

내 성격이 그렇다.

온라인으로 검색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교육 프로그램.

2025년 3월 초 개강, 집에서도 가까운 교육원.

이건 필시, 하라는 계시 같았다.

긴장된 마음으로 장례지도 교육원 전화 번호를 눌렀다.

왠지 엄숙한 분위기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응대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젊은 남자의 밝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당황하며,

“혹시… 젊은 분들도 많이 오시나요?”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네, 요즘 젊은 분들 많아요.”

그의 대답에 묘하게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행이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을 둘러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였나보다.

그렇게 나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감정에 스스로 먹히게 될 순간들을 기대하며,

기록은 계속된다.

두 매

나는 이미 많은 죽음을 마주해왔다.

토끼, 돼지, 닭, 새우, 바퀴벌레, 동애등에…

이들의 사체를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고,

오랜 시간 들여다보며

존재론적 질문이라고,

생과 사의 경계를 사유한다고 거창하게 명명했다.

하지만 정작, 인간의 죽음은 단 한번도

직접 보고 만져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

글쎄.

지금까지 내가 구축해온 철학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래, 이쯤에서 ‘인간도 피식자다’라는 사실을

단지 사유가 아니라 감각으로 증명하면서

마지막 고리를 완성해야겠다.

그런데 그 결심은 내 의지로 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끌려가는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작업 맥락상

당연히 이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수순처럼 느껴지는 지금.

나는 늘 말했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고.

어떤 생명이든 결국

썩고, 먹히는 순환 법칙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이 내 작업의 철학이었고, 내 논리였다.

그러나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인간의 죽음에 유난히 나약하다는 것을.

인간은 그 순환 고리의 예외로 두고 싶었다.

두려움이라기보다, 이기적인 편애에 가까웠다.

사람이 존엄해서라는 보편 윤리 때문이 아니라,

나를 너무 닮았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돼지, 닭, 밀웜, 바퀴벌레.

그들은 나에게 충분히 낯설었고,

그 낯섦 덕분에 감정선을 유지하며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나와 너무 닮지 않았나.

피부의 결, 손톱의 색, 눈꺼풀 아래의 실핏줄.

그 모든 디테일이 나를 자극할 게 뻔했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누가 하라고 시켰나?

그런데 또 안하고 싶은 건 아니지.

아니, 어쩌면 하고 싶었던 걸지도.

그래, 하고 싶어.

근데 왜 이렇게 밍기적대고 있는 거지?

어쩌면 내가 그동안 쌓아온 철학이라는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게 무서운 건 아닐까.

도망치고 싶고, 마주하기는 싫고.

그건 겁쟁이잖아.

무대 뒤, 조명 밖, 정리되지 않은 감정선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슬쩍 덮는 겁쟁이.

너무 무서워서 감정을 눌러 삼키고

예술이라는 포장지로 감쌌던 게 아닐까.

모든 생명이 결국 같은 법칙을 따른다는 건

머리로는 분명한 일이다.

인간의 죽음이나 바퀴벌레의 죽음이나,

이끼나 대장균의 죽음까지도,

똑같은 순환 안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죽음을 보고

바퀴벌레의 죽음을 볼 때처럼 담담할 수는 없지.

그런 감정으로

내가 이 철학을 정말 감각하고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망설임 자체도 결국 또 다른 도피 아닐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렇다면 차라리 모르는 채로 사는 게 나았을까?

애초에 이런 작업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하지만 이미 이 지점까지 왔잖아.

중간에 멈춰서서 계속 같은 생각만 맴돌고 있다니…

내 뇌의 메커니즘이 궁금하다.

그냥 무섭다고 말하면 될 일인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포장하고 있지?

근데 정말 무서운 게 맞아?

이 페이지를 넘기지 않기 위해

오늘의 기록은 여기서 멈춘다.

세 매

2025년 2월,

장례지도사 교육을 한 달 앞두고,

나는 전시 일정으로 방콕에 머물고 있었다.

“죽음을 다루는 작가님 작업에 도움이 될 거예요.”

지인이 권했다. 썩 내키진 않았다.

그래도 한번은 봐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방문한 시리랏 의학박물관의 해부학 전시관.

그곳에는 사람의 사체를 해부하여

표본으로 보존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이 전시는 인간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첫 경험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덤덤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공포가 아니라 구조였다.

아, 종아리의 단면은 이렇게 생겼구나.

이분은 오른쪽 뼈가 파손되어 돌아가신 거구나.

나는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해석했다.

어쩌면 그런 덤덤함은

사체와 나 사이를 가로지른

유리벽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벽은 전시물을 보호하는 동시에,

내 감정을 보호하는 완충 장치 같았다.

게다가 사체는 이미 보존 처리되어

시간이 멈춘 상태였다.

그것은 내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듯했다.

나는 마치 외과의사라도 된 듯

유리막 너머 형체들의 구조를

세심히 관찰하며 들여다봤다.

용액에 잠겨 퉁퉁 불은 피부의 결,

사고로 뒤틀린 뼈의 각도,

변형된 장기의 위치와 색감.

다시 생각해보니 그 눈길은,

의사가 아니라 이미지에 매혹된 미술인의 것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절단된 팔들이었다.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팔들이

유리병 속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고,

그 섹션에는 별도의 제목이 붙어 있었다.

Tattoo

이것이 진짜 사람의 팔인지조차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곳은 오로지 다양한 형상의 타투를 조명하는

미적인 큐레이션 공간이었다.

죽음은 지워지고,

피부 위의 이미지만이 살아남은 듯한 전시.

그 팔은 더 이상 인간의 일부가 아니라,

캔버스를 닮은 신체의 파편이었고,

이미지를 품고 있기에 제거되지 않은

신체의 껍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팔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게 직업병일까?

음...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불쾌한 것, 무서운 것에서

습관적으로 아름다움을 즉시 발견해내는 것.

그리고 끝내 사랑하려고 하는 것.

방어 기제처럼.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

결국 이런 작업으로 향하게 된 건 아닐까.

나는 도망치지 못할 때 변환한다.

혐오를 매혹으로, 공포를 경이로.

네 매

빛바랜 투박한 간판,

희미하게 남은 고딕체의 ‘장례지도사 교육원.’

비좁은 계단을 오르니,

입을 굳게 다문 철문이 버티고 있었다.

나도 굳은 얼굴로 차가운 손잡이를 잡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포식자의 뱃속에 떨어진 먹이처럼,

나는 몸을 움츠린 채 낯선 상황 속에서 두리번 거렸다.

내부에는 제각각 다른 분위기의 가구들이

바랜 우드톤으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엽전 컬렉션이 벽 중앙을 장식하고 있었다.

뜬금없는 배치였지만,

오히려 공간 색감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천장에는 군데군데 검은 때가 끼어 있었다.

수많은 손이 거쳐간 듯 닳은 장례 용품들.

그 위로 형광등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쨍. 한. 형. 광. 등.

전화로 상담했던 직원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교육원의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맨 앞줄 좌우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스테인리스 작업대였다.

그 위엔 미라처럼 천으로 꽁꽁 감긴 마네킹이 있었다.

이미 움직이지 않는 것을 더욱 단단히 묶어 둔 형상.

그 묵직한 정적 앞에서 내 심장이 툭, 내려 앉았다.

‘아, 나는 정말 시신을 다루게 되는 거구나.’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풍경 위로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이름을 알게 되었던,

바카라 루쥬 540.

수업 시작 몇 분 전,

내 앞자리에 앉은 한 남자 수강생의 향기였다.

이상한 이질감이 밀려왔다.

죽음을 배우는 공간에서

가장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 것이

그의 향기였다는 사실에.

쉬는 시간마다

그는 익숙하게 핸드 크림을 꺼내 손에 바르기도 했다.

조말론 꽃향이 교실에 퍼지면,

나는 그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은 먼지의 두께를 가늠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가구의 겉모습을 훑기도 했고,

손은 차가운 테이블을 스치며

새 교재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괜히 만지작거렸고,

귀는 의자의 삐걱임 속에 섞인

낯선 용어들을 붙잡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하지만 내 코는,

오직 그의 향기만을 쫓고 있었다.

그 손에서 퍼지는 냄새, 후각의 압도적 승리.

눈과 귀와 손으로부터 들어온 모든 감각이

단 하나의 냄새에 무너졌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향이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이 교실에서 가장 생생한 존재는

장례 교본을 넘기는 수많은 손들 사이에서,

단연 그의 손이었다.

언젠가 염습을 하게 된다면

그의 향기가 염습실에 가득 퍼질까.

그 잔향이

마지막 손길로 고인의 몸에 남게 될까.

그가 뒤를 돌아 가볍게 인사했을 때,

나는 그의 매끄러운 얼굴에 마음이 또다시 흔들렸다.

아마 다들 느꼈을 것이다.

그가 교실에 들어온 순간,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걸.

강사도, 다른 수강생들도

그의 외모에 은근한 감탄을 흘렸고

어쩐지 말끝마다 웃음이 늘었다.

그의 옆자리에 앉고 싶다.

사체 인형이 놓인 이 서늘한 교실은

뜻밖에도 생의 기운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낯설면서도 설레는 풍경이었다.

다섯 매

교육 셋째 날,

서로 아직 어색함을 느끼면서

쉬는 시간에 이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수강생들과 대화를 했다.

“보람 있을 것 같고…예전부터 해보고 싶었어요.”

“인센티브도 따로 나오고 좋을 것 같아요.”

“해보고 싶었지만 고민 많이 했어요.

감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무섭진 않을까…”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그 솔직함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나의 감정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나도 분위기를 맞추며 그냥

예전부터 관심있었던 직업이라고만 답했다.

아마 그들도 아직 어색한 사이에

더 복잡한 속마음을 꺼내 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죽음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고 싶었다.

그 막연한 두려움의 윤곽이 어떤지.

아니, 그것보다

내가 감정에 어떻게 잠식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눈 앞의 죽음보다

그 죽음을 바라보는 내 반응이 더 궁금했다.

그 감정이 나를 삼킬지,

아니면 내가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걸러 낼지.

그러니까 결국 이 선택은 나 자신에 대한 탐사였고,

이 교육원은 내게 작은 레지던시이기도 했다.

물론, 이곳은 먼저 떠난 분들을 예우하고

유족의 슬픔을 보듬는 자리다.

그 경건함을 훼손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 곁에서 기록하려 한다.

애도와 관찰 사이에서 계속 헷갈려 하는 나를.

글로 남기지 않는 쪽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싶지 않다.

이런 모순을 직면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이 고백이 누군가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나를 바라볼 것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우리는 모두 장례지도사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만

각자 다른 죽음,

다른 내부의 포식자를 품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여섯 매

지옷 만드는 것을 배웠다.

고인의 맨살에 가장 먼저 닿는 속옷.

하얀 습자지 한 장을 손으로 접고 오렸다.

수의 아래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입혀야 한다고 했다.

지옷은 시신에서 흘러나오는 시즙이

수의에 닿지 않도록

몸 위에 한 겹 덧대는 옷이었다.

실용적 목적에서 비롯되었지만,

살아 있을 때 입던 속옷의 형태로

단정하게 접어 만든다.

어쩐지 감동적이었다.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주려는 존중의 마음.

나는 그 형식미에 담긴 마음에 끌렸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작품 같았다.

같은 재료로 종이 꽃도 만들었다.

죽은 이의 관 속에 넣을 작은 장식.

빛이 투과될 정도로 가냘프게 얇은 흰 종이.

내 취향을 정확히 건드리는 질감과 색이었다.

그래서 더 정교하게, 더 예쁘게 만들고 싶었다.

그 바스락거리는 종이는

말라버린 하얀 국화 같이 가벼웠다.

꽃의 형상조차 죽음을 닮아 있는 조형성이라니!

자연스럽게 나는

각도를 섬세히 맞추고, 주름을 조절하고,

조형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도를 찾아

사진을 집요하게 찍어댔다.

꽃의 방향을 조정할 때마다 가볍게 바스락거리는 소리.

죽음 앞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한다.

훗날 내가 죽는다면, 내 몸은 멈춰 있겠지만,

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청각 하나만으로

마지막 이승의 끈을 붙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접고 있는 소리.

그 작은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세상의 진동이라면

그건, 종이의 언어로 번역된 배웅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작업으로 옮겨보고 싶다.

흠, 그런데 지금 꽃잎 각도가 좀…

상상은 흩어지고 다시 사진 찍기에 몰입했다.

어두운 곳에서 윤곽을 강조해 촬영하니

죽음의 향을 머금은 꽃처럼 매력적이었다.

“뭐하세요? 왜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어요?”

옆에 있던 수강생이 이상한 사람을 보듯 물었다.

그제서야 내가 고인을 위한 의례가 아니라,

꽃 자체의 형태와 미감에 빠져있었음을

민망하게 자각했다.

그 뒤로, 그 흰 종이를 접을 때마다

나는 아주 조금 주저하게 됐다.

일곱 매

죽은 이를 닦고 입히는 엽습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충이’다.

수업에선 먼저 속옷 만들고 입혔지만,

실제로는 고인을 마주하자마자

코와 입 안 깊숙이 솜을 밀어 넣는다.

충이는 꺼진 볼을 다시 부풀리고,

몸 밖으로 시즙이 흐르지 않도록 막는다.

고인과 유족을 위한 예의의 절차.

봉제인형에 솜을 채워 꺼진 숨을 살리듯,

충이는 죽은 자의 숨길을 막으며

숨결의 기억을 되살린다.

숨 쉬지 않는 존재.

감각하지 않는 몸.

인형의 입에 솜을 넣을 때마다,

내 목구멍이 함께 죄어 왔다.

이건 복원이 아니라 봉인 같았다.

숨을 멈춘 몸에 숨을 다시 밀어 넣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입 안에 맴돌던 날숨의 잔상마저 눌러 막는 의식.

그건 시작이 아니라 종결이었다.

읍.

나는 되뇌였다.

이것은 인형.

이것은 고통 없는 몸.

여덟 매

나는 오늘도 시신 인형 앞에 섰다.

며칠 반복하니 습자지 속옷 입히는 것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것들도 있었다.

오늘은 소렴을 배우는 날.

종이 속옷 위에 수의를 덧입힌다.

뻣뻣한 수의의 결이 내 손등을 수없이 긁었고,

손톱 아래 살점이 뜯겨 나갔다.

반복된 쓰라림에 미간이 찌푸려지다가

“아!” 참으려던 탄식이 작게 샜다.

하지만 그 뻣뻣함 덕에,

매무새는 단정하고 아름답다.

충이로 솜을 채운 입 위로

얼굴을 덮을 차례다.

긴 솜,

한지,

면목,

입가리개,

폭건을

차례로 포개고

끈으로 조여, 단단히 묶는다.

이건 보호다.

떠나는 길, 춥지 말라고.

그런데도 질식할 것 같았다.

인형이 아니라, 내가.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콜록.

삼베 천에서 떨어진 먼지가

코 깊숙이 파고들다가,

기침과 함께 튀어 나왔다.

그것은 먼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형 대신 내가 해주려는 듯,

또 콜록.

“끈으로 묶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요?

그냥 얼굴을 드러내고 마무리 해도 좋을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화장이면 상관없지만, 매장은 안 돼요.

뼈가 흐트러지면 이장할 때 문제 생겨요.”

그리고 강사님은 건조하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직장이면 시키는 대로 해야죠.”

정적이 흘렀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손은,

아직 누군가를 보내는 데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홉 매

오후 5시 40분.

수업을 마치고 차에 올랐다.

혼자가 된 공간, 시동이 걸리자,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이 치밀었다.

위액에 녹아 내리는 고깃덩이처럼,

나는 내 안에 삼켜지듯 울었다.

차창 너머 석양이 내 동공을 찌른 탓인지

아니면 눈물 때문인지, 두 눈은 잔뜩 일그러졌다.

썬바이저를 내리고,

나는 정체된 퇴근길 도로에서 울었다.

오늘 수업은 달랐다.

수강생들이 오늘은 그냥 놀자고 졸라댔고,

강사님은 요즘 제일 핫하다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틀어주셨다.

감정을 마구 흔드는 신파극.

극 중 인물들이 울고 부서지고 끌어안는 장면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수강생들 모두 울었고,

강사님도 옆에서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나만 울고 있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어버린 공기 속에서,

나는 마른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모두가 정면의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 등 뒤,

보이지 않는 어떤 온도에 집중했나 보다.

누군가가 누군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두 사람만의 작은 온실을 만드는 걸

몇 시간 동안 느끼고 있었다.

그건 시샘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잔잔했고,

외로움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게 출렁였다.

나만 추운 것 같았다.

우중충한 낡은 교육실 안,

익숙한 꽃향기.

내 등 뒤에만 향기 나는 봄이 있었다.

드라마가 투사된 스크린 양옆으로

스텐 작업대에 누워 있는 사체 인형들이

시야에 함께 들어왔다.

나는 감정이 사라진 냉동 공간에 홀로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은 마치 평균 4도로 유지되는 안치실 같았다.

스크린 속 애순이는 가진 건 없었지만 사랑만은 넘쳤다.

남편은 애순이만 바라보는 순정 그 자체였고,

그 집은 가난하지만 서로를 안아주는 온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감정이 식은 게 아니라

애초에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울음은 살아 있었고,

나는 조용히 죽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물 속에서 더 철저히 고립되었다.

차창 밖엔 따뜻한 봄 석양이 쏟아졌지만

그 빛은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얼어붙어 있던 감정을 잠시

해동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감정이 실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거대한 서사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나는 잘 모르겠다.

그가 좋았던 건지.

누군가에게 설레는 감정이 좋았던 건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던 향이 좋았던 건지.

질투가 만든 착각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매마른 풍경에 사랑을 덧입히고 싶었던 건지.

도로는 다시 평온해졌고,

눈물 젖은 얼굴을

손등으로 툭 닦았다.

여전히 차창 너머의 햇살은

해부대 위 무영등처럼 나를 무심히 비췄다.

나는 매일 죽음을 해부하면서도,

정작 살아 있는 감정은 해부하지 못했다.

햇살만이

울고, 멎는

이 생리 반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열 매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뭔가 재미있는 게 필요했다.

우리 반의 왕언니가

마네킹 대신 자신이 시신 역할을 하겠다며

좌대 위에 올라가 몸을 뉘었다.

깔깔 웃는 분위기.

막내가 사수, 나는 부사수.

나는 수의를 준비하며 습관처럼 카메라를 꺼냈다.

비포 에프터, 1차 2차 단계별 구도.

늘 하던 대로였다.

기금 집행 내역 증빙 사진을 찍을 때처럼,

몸이 자동으로 구도를 잡았다.

“비포 사진 먼저 찍겠습니다.”

고인이 된 척 눈을 감던 언니는

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방긋 웃었다.

나는 다시 부사수 위치로 돌아가

저고리를 입히기 위해 언니의 몸을 들어 올리려 했다.

들리지 않았다.

마네킹은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었지만, 사람은 달랐다.

물컹한 살. 묵직한 무게.

있는 힘껏 언니의 몸을 당기고 밀어

저고리 속에 끼워 넣었다.

까슬까슬한 수의를 입고

그 모습 그대로, 줄로 온몸이 묶인 채 누워 있는 언니.

나는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클로즈업도 포함해서.

“단체방에 공유해줘. 딸한테 보여줘야지.”

언니는 웃었고, 나도 “당연하죠.”라고 답했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화면 속 언니의 얼굴이 갑자기 낯설어 보였다.

수의를 입고 누워 있는 모습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임을.

그 사진을 딸이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만약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런 사진을 보낸다면.

나는 웃을 수 있을까.

언젠가 마주할 모습.

멈춰버린 표정.

그때, 오늘 이 장면이 떠오를까.

오늘은 만우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웃었고, 사진을 찍었다.

죽음을 다루는 시간이었지만

죽음을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네킹 대신 사람이 누웠고,

수의는 장난처럼 입혀졌다.

하지만 아주 먼 훗날,

이 사진은 누군가에게 여전히

장난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꺼내어질지 모른다.

그때도

이날이 만우절이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다루는 연습을 했지만,

이별의 죽음 앞에서는 여전히 초보일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웃음이 그냥 웃음으로 남아 있기를.

열한 매

궁중대렴 과정으로 진도가 이어졌다.

소렴을 끝낸 몸을

‘지금’이라는 요 위에 눕혔다.

그 위로 ‘천금’이라는 이불,

‘금침’이라는 베개.

사수님과 나는 손을 맞춰서

‘장매’라는 커다란 천을 동시에 들어 올리고 포개

시신 인형의 몸을 고정했다.

그리고 21개의 매듭,

왼손으로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휘감으며

하나, 둘, 셋, 넷…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 체크!”

강사님의 목소리에 시계를 힐끔 봤다.

아직 괜찮았다.

매듭 위로 여러 겹의 화려한 ‘고깔’ 장식.

잠시 집중이 무너졌다.

고깔의 배열을 정리하다보니

무언가 무뎌지고 부피가 커져가는 형상이

조각 작업의 역재생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떤 가능성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날카로운 존재감을 과시하던

손가락, 턱선, 가슴의 볼록함, 오목함 같은 것들이

부드럽게 평면이 되었다.

머리도 팔도 다리도 모두 덮여

화려한 무늬의 길쭉한 형상만 남았다.

“다음, 입관!”

강사님의 지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관을 열어 인형을 안치하고

꽃장식.

결관끈으로 관 묶기.

휴…

1시간 안에 완료하기 성공.

그땐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침대에 누워 떠올려보니

아까 교육원에서의 동작 하나하나가

단순한 절차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완성된 결과의 화려함과

한 겹 한 겹 묶어가는 손의 반복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느낀다.

처음엔 그저 과잉된 절차와 장식처럼 보였지만

그 안엔 말없이 눌러 담긴 슬픔이 있었다.

이 모든 의례는

어쩌면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닌,

죽음 앞에서의 혼란과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한

살아 있는 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일 수도 있다.

이성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한눈 팔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슬픔을 잠시나마 밀어낼 수 있도록.

물론, 누군가는 살아있는 자가 아닌

고인의 영령을 위한 절차로 여길 것이다.

나는 언제나 감정을 구조화한다.

두려운 감정이 덩어리째 튀어나오지 않도록,

쪼개고 누르고 묶고 반복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궁중대렴의 반복적 감싸기가

나의 조형 어법과 닮았다고 느꼈다.

내일 또 교육원에 가면

나는 다시

싸매고

묶고

장식할 것이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열두 매

수업 막바지,

우리는 염습 동작에 제법 익숙해졌다.

거의 매일 시신 마네킹에

염포를 두르고, 손과 발을 모으며

죽음을 정돈하는 리듬을 익혀왔다.

오늘 따라 창가로 따스한 햇살이 깊게 들어왔고,

그 햇살 아래,

우리 반의 왕언니, 반장님이

나지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신 마네킹 위에 염포를 두르고 있었다.

염포는 마네킹 위로

다림질한 식탁보처럼 반듯이 내려앉았다.

소소한 집안일을 하듯,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손놀림이었다.

생각해보면,

반장님의 콧노래는

언제부턴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아무런 위화감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그 맑은 콧노래가

강사님이 설명하시는 장례 용어와 선명하게 대비되며

내 귀에 깊이 박혔다.

반장님은 교육 첫날,

시신 마네킹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햇살을 등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듬 타듯 손을 움직이고 있다.

느슨한 미소와 함께.

오묘한 장면이었다.

죽음과 삶이 하나의 화면 안에 담겨 있다니.

나도 모르게 탄성을 외쳤다.

“오! 반장님, 콧노래를 부르시네요!”

너무도 초현실적인 그 조화,

죽음, 햇살, 손놀림, 콧노래.

무심코 튀어나온 감탄사였다.

하지만 반장님은 순간 움찔하시더니

약간 민망하신 듯 말했다.

“아고, 재은 씨… 내가 이걸 고쳐야 되는데,

콧노래가 습관이라…

진짜 현장이라면 안 이럴 텐데…”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뇨, 반장님.

그냥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햇살은 염습 위에도 스며든다.

콧노래는,

죽음의 풍경 속에 던져져도

살아내려는 몸의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열세 매

옷장을 열어, 장례식장에 가듯 검은 드레스를 꺼냈다.

이별의 의복이자

장례지도사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의복.

교육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마지막 수업인데, 안 오세요?”

나는 “조금 이따가 봬요.” 라는 말만 꺼냈다.

마치 고인을 덮는 하얀 천처럼

매끈한 생크림이 덮힌 케이크,

그 위에 꽂을 ‘18기’ 기념 숫자 초까지 준비하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니까.

동기 교육원 수강생들과 교수님들께 엽서를 쓰며

그동안 쌓여온 시간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봤다.

전날부터 만든 불고기 김밥,

새벽에 구운 수제 쿠키,

아침 잠 줄이며 준비한 유부초밥,

설렁탕 회식, 국수 맛집, 커피 선물.

막연한 두려움을 함께 견뎌 낸 우리는,

맛있는 음식에 수줍은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건넸다.

엽서를 쓰느라 그랬나?

예쁜 장면만 떠올랐다.

마지막 날이라서 떠오른 감정들일지도.

그런데 왜 유독,

마지막 날이면 그런 감정들이 진해지는 걸까.

교육원에 도착하니

모두가 한마음으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늘이 마지막인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웃었다.

케이크는 아직 서프라이즈니까.

수업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고,

우린 미리 계획했던 대로 조촐한 쫑파티를 시작했다.

책상을 누르던 장례 예법 교재는 한켠으로 밀려나고,

오늘은 그 자리에

짬뽕, 쫄면, 탕수육, 양장피, 족발이 푸짐하게 펼쳐졌다.

시덥잖은 농담이 오가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배가 불러올 무렵,

나는 슬며시 감춰두었던 케이크를 꺼냈다.

“사실 케이크 사느라 늦었어요.”

그리고 밤새 눌러 쓴 엽서를 하나씩 건넸다.

“…뿌앙 하고 눈물 터지던 그날도 생생하네요.

실습 때 착착 손발 맞춰 수의 입혔던 것,

다정하게 정리를 도와주던 순간도

오래 기억날 것 같아요.”

검은 옷을 입은 우리는, 하얀 케이크 앞에 둘러섰다.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훈훈했다.

대부분의 마지막이 그렇듯.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불편했던 사이가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 한 마디에 애틋해지는

이 급격한 감정의 전환.

그건 진심이면서도, 어딘가 연극 같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

극 중에 다투던 배우들이 모두 무대로 나와

다정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처럼.

우리의 감정은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무대가 연출한

일시적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은, 나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감동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늘 이런 마지막이라는 말 하나에 휘청이고,

감정에 홀리듯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우리의 연극 같은 시작과 끝을

교실에 여전히 누워 있는 시신 마네킹 두 구 만이

말없이 지켜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될

다음 기수의 연극도,

변함없이 지켜볼 것이다.

열네 매

나는 지금, 장례지도사 교육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우리 집, 내 방에 혼자 앉아 있다.

텅 빈 공기엔 아무 향도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얼굴이었다.

마치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사람처럼

좋아하고, 기대하고, 미워하고.

그 감정들이 오래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교육원에 가지 않는 첫 아침이 시작되자

모든 것이 툭, 하고 끊어졌다.

교실의 웃음소리도,

점심시간 떠들썩한 대화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침묵으로 바뀌었다.

불과 하루 전의 일이

몇 년 전의 기억처럼 아득해졌고,

꿈에서 본 장면처럼 현실에서 밀려났다.

설렘도, 서운함도, 서러움도

한순간에 공허로 뒤바뀌는 것.

감정은 더 이상 나를 갉아대지 않는다.

감정의 턱관절은 멈췄고, 나는 해방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되씹히던 리듬이 사라진 자리에

더 큰 허전함이 남았다.

이 끊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졸업할 때, 퇴직할 때,

레지던시가 끝났을 때,

오랜 리듬으로 이어지던 것들도

언제나 결국,

툭, 하고 끝나버린다.

나는 늘 이 낯설고 허무한 끊김을 겪어왔다.

이 감각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곧, 익숙하게 조용해진다.

오랜 시간 병상에 계시던 분과

차분히 작별을 준비했던 경우조차,

결국은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툭.

준비를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상실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이상하게 조용하며,

되돌릴 수 없이 완전히

툭.

열다섯 매

장례지도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장례식장에서의 실습이다.

고인이 생기고, 장례 일정이 잡혀야만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

마치 어두운 내장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내장의 주인이 숨을 멈춰야만 밖으로 퍼져 나오는

장내미생물처럼,

나는 죽음이 불러야만 움직일 수 있는

숙명적인 대기 상태에 놓여 있다.

며칠째 호출이 없다.

아무도 돌아가시지 않아서다.

봄이 폭발하듯 만개했다.

환절기엔 유독 많은 이가 떠난다던데,

내가 가야 할 장례식장은 한산하다.

죽음이 드물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경험하지 못해 아쉬운 내가 있다.

이 역설은 뒤틀린 의자처럼 삐걱거린다.

나는 그 불편한 자리에 앉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록한다.

열여섯 매

오늘 아침, 며칠 조용하던 전화기가 울렸다.

드디어 장례식장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오늘 오후 바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막 봄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오늘도 아무 일 없을 것 같아서.

어제 하루 종일 내리던 봄비는 멈췄고,

창문을 연 틈으로 봄 공기가 들이닥쳤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지금부터 하게 될 일의 성격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건 막을 수 없었다.

기다리던 사건이 도착했다는 기이한 반가움.

마치 포식자의 입 안.

식도로 넘어가기 직전, 목구멍 어딘가에

잠시 걸려있있다가,

봄비 한 모금에 미끄러져

다시 삼켜지는듯한 다행감.
 

나는 입고 있던 노란 스웨터를 벗고

검은 셔츠로 갈아입었다.

만약 교육이 끝나자마자 곧장 실습을 하게 되었다면

이런 기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느긋하게 흘러간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며칠,

걱정이 켜켜이 쌓여

내 감정을 기괴한 곡선으로 그려냈다.

이 곡선은 생물학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의 신호 속에서,

자연의 가장자리쯤에 발을 디디고

균형을 잡으려 비틀거리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출발 전 잠깐 짬을 내 기록을 남긴다.

감정이 날아가 버릴까 봐.

두근거린다.

나는 지금, 입꼬리를 누르며 웃음을 삼키고 있다.

발효를 기다리는 유기물처럼.

어떨까.

오늘 처음으로 염습을 하고 돌아온 저녁,

나는 여전히 웃고 있을까.

열일곱 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염습이 시작된 뒤였다.

나는 무표정을 장착하고 흰 가운을 입었다.

8년 전 《안젤라 연구실》 작업 당시 입었던 가운을

다시 꺼내 입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어딘가 달라져 있다.

삶을 장난처럼 다루던 재기발랄함은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아 이제는 죽음을 매만지려 한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될까.

가운을 한 번 더 단정하게 쓸어내리고,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형광등 불빛에 고인의 몸이 차갑게 비춰지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동료 수강생들이 일손을 돕고 있었고,

염습을 주도하던 장례지도사님은

고인의 움푹 패인 입가를 정돈하고 계셨다.

나는 산만하게 흩어지는 시선으로 상황을 훑기 바빴다.

냄새.

오묘한 냄새가 느껴졌다.

화장품과 알코올, 묵은내, 고인의 체취가 뒤엉켜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구석에 서서 잠시 낯선 풍경을 감각했다.

그리고 몇 분이 흐른 뒤,

고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로 친근감이 느껴졌다.

시체가 아닌, 누워 있는 할아버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얼굴.

살짝 벌어진 왼쪽 눈꺼풀 안으로

초점 없는 눈동자가 흐릿하게 떠 있었지만,

죽음을 말하기엔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무서워서 떠올릴 수조차 없는 그런 얼굴을.

태국에서 처음 죽음을 마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리관 너머 포르말린 용액 속에 잠긴 사체.

그것은 내게 도달하지 못한 채 멀찍이 잠겨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유리막도, 용액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아무렇지 않았다.

오랜 시간 나와 죽음 사이에 놓여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단 하나.

입술 색이 이상했다.

검은 잉크를 묻힌 것 같은 색.

그 감각은 ‘죽었다’가 아니라 ‘잘못됐다’였다.

사람의 입에선 나올 수 없는 색.

인쇄 오류 같은 색.

나는 그걸 보고도 무섭지 않았다.

이상했을 뿐이다.

나는 수의를 정돈을 돕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가 고인의 두 발목을 들어 올렸다.

차가웠다.

안치실의 냉기가 수의를 뚫고 내 손끝까지 전해졌다.

말랑말랑함과 흐물흐물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살.

고인 입에서 흐른 누렇고 불그죽죽한 점액을 닦으며

순간적으로 포토샵의 스포이드 도구를 떠올렸다.

이 분비물의 CMYK 컬러 넘버는 몇번쯤 될까?

그렇다면 이 색의 보색은 상큼한 민트 계열?

모든 준비가 끝났고, 유족을 염습실로 모실 차례였다.

우리는 첫날의 실습생이기에

애도의 시간에는 옆 공간으로 물러나

큰 유리창 너머로 그 순간을 지켜봤다.

염습실의 문이 열리자 고인과 닮은 이들이 들어왔다.

어떤 분은 굳은 얼굴로, 어떤 분은 소리치며,

어떤 분은 눈물을 꾹 삼킨 채 마지막을 마주했다.

유리창 프레임 너머의 염습실은

스크린 위에 부유하는 영화 속 장면이 아니었다.

그곳은 선명하고 묵직한 현실이었다.

유족들은 할아버지를 껴안고 흐느끼며 되뇌었다.

“내가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장례지도사는 잠시 기다리다가, 작별의 때를 알렸다.

“이제 얼굴을 덮어드리겠습니다.”

순간, 흐느낌은 다시 오열로 바뀌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내 눈에도

눈물이 눈꺼풀 끝까지 차올라 흘러내리려던 찰나,

내 옆에 선 실습 동료가 귓속말을 건넸다.

“저거… 이름이 뭐였지?”

그는 고인의 얼굴 위에 덮힌 삼베를 가리켰다.

그 말에 눈물은 쏙 들어가고 전두엽 어딘가에서

정확한 답이 매끄럽게 튀어나왔다.

“면목이요.”

열여덟 매

안치실 냉장고 문이 열렸다.

병원 로고가 찍힌 침대보에 전신이 감싸인 고인은,

어디가 어깨이고 어디가 다리인지조차 흐릿했다.

‘어떤 분이실까.’

대부분의 고인은 전신이 흰 천에 싸여 이곳으로 온다.

장례지도사는 매일 새로운 포장을 열어

예측할 수 없는 얼굴과 마주한다.

익숙해질 틈도 없이, 낯선 만남이 반복된다.

우리는 고인이 누운 트레이를 꺼내 작업대로 옮겼다.

고인은 잠시, 일상의 공기 속에 놓였다.

침대보를 걷자 살갗이 서서히 드러났다.

얼굴 쪽 천을 들추기 전,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하나, 둘, 셋.

고인의 얼굴이

내 눈 앞, 두 뼘 거리에서 불쑥 나타났다.

아, 역시 어딘가 낯익은 얼굴.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인상.

사수께서 관절을 마사지하며 경직을 풀자고 하셨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맨손에 죽음의 기운이 닿는구나.

아차. 이런 매혹은 불순하다.

고인을, 죽음의 오브제로 다룬다는 자각.

윤리가 흔들리며, 매혹과 자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재은 씨, 왼쪽으로 와주세요.“

그의 동작을 따라 고인의 왼팔을 천천히 회전 시켰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주무르며,

굳은 손을 풀어냈다.

손가락이 서서히 느슨해지더니 어느 순간,

스스로 움직여 내 손을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고인의 심지굴근을 누른 모양이다.

해부학 드로잉 강의 준비 자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고인의 왼손과 나의 오른손이 맞잡혔다.

마치 오래 알던 친구의 손을 쥔 듯한 익숙한 감각.

그러나 방금 전 처음 만난,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의, 낯선 손이었다.

냉기와 온기가 겹치며,

같은 차원의 온도로 조율되는 기묘한 순간.

소독용 알코올과 핸드크림 냄새는

맞잡은 손 사이에서 서로 엉키며

내 감각의 더 깊은 층을 건드렸다.

그렇게 나는 고인과 처음이자 마지막 온기를 나눴다.

언젠가 나도,

낯선 이의 손길로부터 마지막 온기에 잠시 닿았다가,

정말로 작별하겠지.

37.5도.

생각에 잠긴 사이 유족 한 분이 들어오셨다.

수의를 입히기 전,

고인을 한 번만 더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신 것이다.

그 분은 아직 완전히 닦이지 않은 고인의 얼굴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사랑해요.”

모든 고인은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존재다.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러운 시체일지 몰라도.

유족이 떠난 뒤,

나는 알코올에 적신 탈지면 패드로

고인의 눈꼽, 입가에 흘러내린 복수, 목의 오염물을

닦고, 또 닦았다.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니

고인의 생전 표정이 어떤 분이었을지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정이 들고 있었다.

아니면 그저 내 감정이 견디려 착각을 일으킨 건지

모르겠다.

그 감정을 뒤로한 채,

우리는 모든 유가족들을 고인 곁으로 모셨다.

고인과 닮은 얼굴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중 고인과 가장 닮은 젊은 여성이 다가와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고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억눌린 표정과 이완된 표정 사이에 생과 사가 있었다.

고인의 얼굴은 슬프지 않았다.

슬픔은 얼굴 밖, 살아 있는 자들의 것이었다.

잠시 후, 유족들의 온기 속에서

천판이 조용히 닫혔고, 입관은 마무리되었다.

그리웠을 세상의 온기를 품고,

고인은 다시 안치실의 유예된 시간 속으로 돌아갔다.

열아홉 매

오늘은 평소보다 절차가 더 많았다.

고인의 몸 위로, 요와 이불, 장매, 맷베까지 감싸는 과정을

모두 유족 앞에서 수행해야 했다.

장례식장 상위 등급 패키지였기 때문이다.

금박 문양이 반짝이는 고깔,

봉황과 모란이 수놓인 고급 삼베 수의.

눈을 감겨드리고,

고인의 얼굴에 남은 삶의 흔적을

면도칼로 정갈히 밀어낸 뒤,

유족분들을 염습실로 모셨다.

눈물이 곧바로 터졌다.

많은 유족분들이 돌아가며 고인의 몸을 끌어안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통곡이 격해지는 와중에도,

나는 절도 있는 손놀림에 집중하며

흔들림 없이 고인의 얼굴을 솜으로 감쌌다.

그리고 그 위에 염포를 겹겹이 입혔다.

한 겹, 또 한 겹, 삼베 옷이 포개질 때마다

울음 소리도 겹겹이 잦아들었다.

교육원에서 인형을 눌러 감쌀 때의 갑갑함과는 달리

실제로는 고인과 유족 사이의 감정을

감싸 안으며 차분히 눌러주는 듯했다.

두루뭉술해진 몸 위로 맷베 끈이 묶였다.

어느새 유족들의 시선은

리듬감 있게 끈을 매듭지어가는

사수의 손을 따라가고 있었다.

사수께서

매듭의 마무리, 꽃 만들기를 내게 맡기시자,

모든 시선이 나의 손끝으로 쏠렸다.

나는 의식적으로,

고급형 의례에 어울리도록 손을 움직였다.

겉으로는 직업정신이 투철해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무대에 오른 사람처럼

몸 안 깊은 곳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 달콤함의 근거는, 좀 우습게도

내가 맷베꽃 ‘에이스’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미술 과제를 칭찬받는 어른처럼

속으로는 새삼스러운 손재주 칭찬에 우쭐했고

그 짜릿함을 은밀히 즐기고 있었다.

물론 무표정이었다.

유족들도 잠시 슬픔을 거두고

내 손이 만들어내는 장면에 몰입하는 듯했다.

나는 차오르는 에너지를 숨긴 채,

손으로 신성한 의식을 행하듯

매듭마다 길게 남은 끈을 우아하게 모아

손목 각도를 맞추며 둥글게 꼬아 말았다.

일곱 송이의 작은 맷베꽃이 피었고,

곧 천판이 열렸다.

이제 고인을 관에 모실 시간이다.

“입관이오.”

사수님의 구령과 함께,

잠시 가라앉았던 유족들의 흐느낌이 다시 터져나왔다.

그 울음은 익숙했다.

며칠 전, 무연고로 떠난 분을 모실 때 들었던

조카들의 통곡과 다를 바 없었다.

금박 고깔도 꽃 자수 수의도

슬픔의 높낮이를 바꾸지는 못했다.

슬픔이 짙어졌지만, 30분이 지나 참관이 종료됐다.

유족들은 안내에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두 시간의 오전 노동이 끝났고

공간은 금세 고요에 잠겼다.

정적 속,

염습실 한가운데에서

작은 파리 한 마리가 윙 하고 떠돌았다.

동료가 손바닥으로 잽싸게 파리를 가두었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그 손 안에서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휴지를 가지러 가는 짧은 틈,

직원의 낮은 말을 들었다.

“여긴 파리나 거미를 죽이면,

그날 새 고인이 들어오지요.

죽이세요.

그래야,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요.”

그 말은 농담 같기도 하고,

기도문 같기도 했다.

휴지를 건넸고,

파리는 가볍게 짓눌렸다.

나는 파리의 마지막 꿈틀거림을 가만히 지켜봤다.

스무 매

‘오, 숲의 신이시여…’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입술 안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품고 있던 늑대.

깊은 숲 속 작은 학교에 늑대, 고양이, 얼룩말…

여러 동물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중에는 말수 적은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토끼는 조금씩 뒤처졌지만 성실했고,

항상 먼저 인사하며, 누구에게나 다정했다.

낙엽쓸기 시간,

토끼가 두더지 집 담장을 조금 무너뜨렸다.

두더지가 발끈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금세 수습되었다.

그러나 늑대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숲에서 살기 어려울 거야.

모두가 너를 미워하게 됐거든.”

그 말은 농담같았지만

으스스한 예고였다.

늑대는 서슴없이 두더지를 자처해 피해자의 목소리로

토끼의 자리를 조금씩 좁혀 갔다.

소문은 퍼지고 실수는 점점 부풀어

“저 토끼랑 엮이면 큰일 난다.”는 말이 돌았다.

그리고 예고대로, 토끼는 무리에서 밀려났다.

늑대는 예전에도 그랬다.

늑대는 누구라도 헷갈릴 만한 질문이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가 반복해서 물으면,

“그건 이미 말했잖아!”

모두 앞에서 송곳니를 번쩍 드러내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로 몰았다.

그 말에 사슴, 반달곰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많은 동물들은 늑대에게 달콤한 열매를 받은 적도,

성가신 일을 대신 맡겨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늑대는 유머러스했고, 열정 가득했다.

토끼를 조롱하고 밀어냈지만

많은 친구들은 여전히 그를 좋아했다.

언젠가부터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숲에는 기묘하게도 평온함이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토끼가 사라진 숲에서 늑대는 여전히

숲의 신 앞에 경건히 기도를 드렸다.

며칠 전 내게 예쁜 꽃을 건네며 포근히 미소 짓던

그 입술로.

어느 날, 늑대는 조용히 지켜보던 내게 말했다.

“모두, 우리 숲을 위한 일이었어.

나는 앞으로도 이 숲을 지킬 거야.”

이상할 만큼 선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하지만 그 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늑대도 숲을 떠났다.

자신은 원래 바다의 아이였다며,

숲이 아닌 바다가 그리워졌다며,

해맑은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남겼다.

“함께해서 즐거웠어, 모두 잘 지내.”

나는 고목나무 꼭대기에 앉아

피도 눈물도 없는 그 광경을

기록하듯 바라봤다.

그뿐이었다.

기도처럼 시작해, 포식으로 끝나는 입.

침묵으로 시작해, 기록으로 끝나는 발톱.

부엉.

스물한 매

나는 무표정인 줄 알았다.

나만 그렇게 알고 있었다.

장례식장 현장 실습까지 끝난 오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동료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재은 씨 첫날에, 눈 진짜 반짝이더라.”

“너무 신나 보였어.”

그 순간, 과거의 말들이 떠올랐다.

사실 이런 말은 낯설지 않다.

“작가님 왜 웃고 있어요?”

그 말들은 언제나

나를 귀엽거나 기쁜 사람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대체로,

귀엽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순간들이었다.

죽은 돼지를 바라볼 때,

바퀴벌레에게 줄 먹이를 준비할 때,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는 구더기를 들여다볼 때.

나는 그런 장면에서도 웃고 있었나보다.

눈을 반짝이며 나도 모르게.

한 번은 동료 작가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적도 있다.

“나, 너무 자주 미소 짓는 것 같아서 고민이야.”

나는 늘 무표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이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나는 어느 지점에서 웃음이 흘렀던 걸까.

몰입과 함께 스르륵 스며들던 어떤 쾌감.

나는 눈 반짝임의 출력 회로,

감정 작동의 조건을 예리하게 집어 올리고 싶었다.

모든 구더기에게 몰입했던가?

모든 사체에 몰입했던가?

잠깐.

구더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구더기에게서 귀여움을 발견한

내가 의외였던 것 같은데?

나는 대상을 본 게 아니었다.

나는 대상 앞에서 예상과 어긋나게 작동한

내 감정의 방향 자체에 흥미를 느꼈던 것이다.

편견이 무너진 자리에

‘응? 이게 뭐지?’

라는 질문이 불쑥 솟아오르는 바로 그 순간,

내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신선함과 낯섦이 동시에 파고들며,

나라는 시스템 안에서 도파민이 터지는 것이었다.

염습실에서의 표정은

고인을 향한 웃음이 아니라,

처음 고인을 마주한 내 감정의 작동 방식을 인지한 순간,

그 감정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 안정적으로 흘러서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게 놀랐고,

그게 피식이라는 반응으로 출력됐다.

어쩌면 대단히 폐쇄적인 인식의 순환.

나는 여전히 기록 중이다.

표정을 움직이는 그 회로를 분석하며.

그리고 지금도 아마 무표정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 기록 전체가 사실

정면을 응시하는 눈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죽음을 앞에 두고 시선은 어느새 샛길로 흘러가 있었다.

점액질의 CMYK 컬러와 보색을 고민하고,

장례용 종이꽃의 미적 질감에 빠져 있었다.

딴생각, 엉뚱한 상상, 미적 탐닉으로 빠져들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현실과 나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결국 내가 매번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짓거나

무표정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감정에 삼켜지기 직전 한 발짝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 삼켜지지 않았다고 믿었다.

정신은 명료했고, 손은 흔들림없이 기록 중이었으니까.

착각이었다.

나는 이미 식도 안에 있었다.

감정이 아닌, 생각의 식도.

감정에 삼켜지기 직전 한 발짝 물러나는

나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저작근이고 이빨이었다.

내가 나를 관찰하고 파악할수록,

포식자는 내 안에 더 깊이 침투했다.

이 기록을 수백 번 퇴고하는 동안

나는 오래오래 씹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 Jae-eun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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