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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IA-피식의 서

우리는 모두 뱃속에 포식자를 품고 산다.

《GAIA – 피식의 서》는 인간이 자연의 순환 속에서 최상위 포식자라는 감각을 해체하고, 인간 역시 결국 ‘먹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는 다른 생명의 죽음을 통해 순환을 비유하던 이전의 가이아 시리즈에서 나아가, 인간의 죽음을 직접 다루는 개념적 전환점에 해당한다.

나는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내 감정과 사고의 패턴을 관찰하기 위해 장례지도사 활동을 시작했다. ‘모든 생명은 먹고 먹히며 순환한다’고 말하면서도 인간을 이 법칙의 바깥에 두고 싶어 했던 나의 태도를 인식했고,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나타나는 내면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이 철학을 감각적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신적 피식은 인간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추상적 사건으로 남는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먹이사슬 최종점에 머무는 특권적 존재처럼 보인다. 나는 이 간극이 오히려 인간의 예외성을 은근히 강화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도 물리적으로 먹히는 존재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지점에서 과학적 사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명 속에서 맹수에게 먹히는 일은 드물지만, 모든 인간은 죽음과 동시에 장내 미생물에게 가장 먼저 분해된다. 이 ‘Thanatomicrobiome’에 대한 정보를 접하며, 인간은 태생적으로 피식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과 협업해 나의 장내 미생물을 채취하고 배양했다. 배설을 통해 밀려나온 미생물들은 ‘탄생’이라 부르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와 분리되었고, 언젠가 나의 몸을 분해할 포식자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죽음을 다루는 훈련 속에서 경험한 정신적 반응과, 나의 몸을 분해할 미생물에 대한 관찰은 결국 ‘이미 내 안에 살고 있던 포식자’와의 조우로 이어졌다.

나는 살아서는 불안과 사고의 반복에 먹히고, 죽어서는 미생물에게 먹힌다. 이 되새김은 텍스트와 조형으로 발효되었고, 장내 미생물이 씹어 해체할 나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품게 될 것이다.

텍스트 작업 〈무표정의 기록집〉은 장례지도사로서 죽음을 다루는 과정에서 나타난 내적 반응의 기록이다. 예상과 달리 감정은 폭발하지 않았고, 분석, 회피, 전환 같은 이성적 기제가 먼저 작동했다.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거나 감정을 해부하는 방식은 나를 보호하는 듯 보였지만, 반복될수록 그 사고에 붙잡혀 있었다. 이성은 감정을 제어하는 도구가 아니라 또 다른 포획의 구조로 작동했다.

결국 남은 것은 감정에 먹힌 자국이 아닌, 불안정한 생각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던 이성적 되새김의 흔적이었다. 기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오래오래 씹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무표정의 이빨〉은 이 마지막 문장을 조각적 방식으로 변환한 작업이다. 기록의 문장을 ‘의자’라는 문명의 장치에 금속 활자로 새겨 넣어, 살에 압력을 전달하는 거대한 활자판으로 제작했다.

의자는 본래 사유와 판단, 권력과 위계를 조직하는 문명의 기반이지만, 이 작업에서 의자는 더 이상 인간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관객의 몸을 눌러 흔적을 남기는 조각적 주체로 전환된다. 인간은 의자에 앉는 주체가 아니라, 의자의 활자판에 의해 기록되는 ‘인쇄 면’이 된다. 도구와 주체의 위치, 문명의 위계는 조용히 뒤집힌다.

나의 피부에 눌린 문장은 사진 작업 〈무표정의 자국〉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피부에 새겨진 그 문장은 오래 남지 않는다. 몇 분 안에 흔적 없이 사라진다. 사유와 기록은 영속성을 갖지 못하며, 문명의 위치 역시 고정되지 않은 채 미세하게 이동한다.

〈숭고하지 않은 아이〉는 인간의 죽음이 장내 미생물에 의해 가장 먼저 분해된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고독사 현장에서 반려동물이 주인의 몸을 먹는 사례들을 조사하며, 나와 같다고 여겼던 존재가 어느 순간 나를 포식자로서 마주하게 되는 지점을 생각했다. 이 경험은 인간이 스스로의 몸에 먹히는 피식자임을 드러내며, 자연의 무심한 순환 속에서 인간 역시 특별하지 않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나는 채취한 장내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촬영하고, 그들에게 쓴 편지를 작업으로 구성했다. 미생물들은 일상적으로 가볍게 취급되지만, 결국 나의 육체를 분해할 미래의 주체들이다.

영상 곁에는 장내 미생물에게 보낸 작가 본인의 원본 편지가 놓인다. 관객은 투명한 비석 속에 보관된 식용 편지를 꺼내 삼킬 수 있다. ‘나를 먹을 너에게 / 너의 집인 사람으로부터’라는 문구만 적힌 이 편지는, 관객이 그것을 삼키는 순간 각자의 의미를 품어 장내 미생물에게 전송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편지가 삼켜지는 순간부터 작업은 전시장 밖에서 이어진다. 관객의 몸은 작품이 내부에서 다시 작동하는 또 하나의 전시장이 된다.

그러나 미생물의 세계에서는 문장이 의미로 작동하지 않는다. 〈삼키는 몸〉은 〈숭고하지 않은 아이〉의 의례적 구조를 다시 무너뜨린다. 편지에 담았던 소통, 교류, 예언, 선언과 같은 의미의 장치를 모두 진동으로 환원시킨다.

스레인리스 트레이 아래에는, 내가 편지를 낭독할 때 복부에서 발생한 진동이 저주파 형태로 깔린다. 트레이는 하나의 공명체처럼 울리며, 언어가 사라진 몸의 내부 리듬만을 남긴다. 이 울림은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언어 이전의 파열음, 의미가 제거된 리듬만이 남는다. 의례와 상징의 잔향은 흡음재 속으로 침잠하며 조용한 웅얼거림만을 남긴다.

이 스테인리스 트레이는 안치실에서 사용하는 시신 트레이이며, 흡음재 좌대의 정중앙에 놓인다. 금속의 무게로 중앙부가 깊게 눌리며, 흡음재 표면의 돌기는 내장이나 미생물 군집을 연상시키는 질감으로 변한다.
관객은 이 트레이 위에 누울 수 있다.
죽음을 옮기는 도구 위에 몸을 두는 순간, 관객은 죽음의 자리를 점유한다.

청각은 죽음 직전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라고 한다. 트레이를 통해 전달되는 저주파의 진동은 마지막 순간의 희미한 울림처럼 관객의 몸 전체로 스며든다. 그것은 내가 생전에 읽었던 편지의 낭송이지만, 더 이상 언어가 아닌 파동으로만 존재한다.

누운 관객의 몸은 흡음재 내부로 가라앉으며, 삼켜지는 감각을 경험한다. 관객은 듣는 자가 아니라, 삼키는 자이자 죽어가는 자로 전환된다.

원래 소리를 흡수하기 위해 사용되는 산업재인 흡음재는 여기서 울림을 품는 몸처럼 작동한다. 죽음을 품는 땅, 혹은 유기체의 표면처럼.

이 삼킴은 여러 층위를 가진다. 관객은 진동을 삼키고, 인간은 음식과 감각을 삼키며 생존하고, 미생물은 인간을 삼켜 해체하고, 객체인 좌대는 트레이를 삼키듯 품는다.
〈삼키는 몸〉은 이처럼 주체와 객체, 삶과 죽음, 인간과 미생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삼킴의 장을 드러낸다.

알루미늄 합금, 아크릴, 흡음재, 식용 종이, 시신 트레이. 이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재료들은 모두 산업의 언어를 지닌다. 각각은 내구성, 투명성, 차단, 분해, 단절을 위한 재료다. 그러나 작업 안에서 이 물질들은 본래의 쓰임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알루미늄은 몸을 압박하며 기록을 남기되, 그 기록은 곧 사라지는 휘발의 기록이 된다. 아크릴은 기념비처럼 보이지만 결국 삼켜지는 의례의 매개가 된다. 흡음재는 소리를 지우는 장치에서 울림을 품는 내장의 표면으로 변한다. 식용 종이는 메시지를 몸으로 전달하는 매개가 된다. 시신 트레이는 해체와 순환을 여는 입구가 된다.

피식의 서(書)는 기록이면서 동시에 계속 지워지고 먹히는 기록이다.

《GAIA–피식의 서》는 먹힘, 분해, 발효, 순환, 되새김 속에서 인간과 자연, 감정과 미생물, 기억과 창작이 서로를 해체하고 포식하며 다시 살아나도록 만든다.

나는 오래오래 씹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We all live with predators inside our gut.

GAIA – Scripture of the Preyed dismantles the human sense of supremacy as the apex predator and reveals that humans, too, are ultimately beings who are eaten. This marks a conceptual turn from earlier chapters of the GAIA series, which addressed ecological circulation through the deaths of other species; here, the work deals directly with human death itself.

I began working as a funeral director to observe the patterns of my own emotions and thoughts in the face of death. I had long stated that “all life is born, dies, eats, and is eaten,” yet I realized that I had quietly exempted humans from this law. By placing myself before death, I sought to perceive—through sensation rather than theory—how all life is ultimately consumed.

But mental consumption remains an abstract, internal event. If preyhood is limited to inner anxiety and rumination, humans remain privileged—preyed upon only in the mind while still standing at the end of the food chain. This abstraction subtly reinforces human exceptionalism. I therefore turned to reveal that humans, like all other beings, are physically consumed.

Scientific fact became decisive here. Though modern humans are rarely eaten by animals, every human body is consumed first by its own gut microbes at the moment of death. Encountering research on the thanatomicrobiome, I came to understand that humans are, biologically, born as prey.

With the cooperation of the Department of Microbiology at Jeju National University, I collected and cultured my own gut microbiota. Expelled through defecation, these microbes are separated from me in a way far from “birth,” yet they will one day function as the predators that decompose my body. Observing my own mental reactions in funeral training, while studying the microbes that will dismantle me, led to an encounter with predators that had always lived inside me.

In life, I am eaten by anxiety and recursive thought; in death, I will be eaten by microbes. This rumination ferments into text and sculpture, and the flesh chewed by microbes will return to soil and nurture new life.

Records of Blankness

The textual work Records of Blankness consists of notes documenting my internal responses during funeral director training. Contrary to expectations, emotion did not erupt; instead, rational mechanisms—analysis, avoidance, redirection—activated first. These strategies seemed protective yet ultimately trapped me within my own thinking. Reason, rather than mastering emotion, revealed itself as another structure of capture.

What remained was not the mark of emotion devouring me, but the traces of rational rumination moving endlessly between unstable thoughts. The final line reads:

“I have been chewed endlessly. And I probably still am.”

The Blank Bite

The Blank Bite translates this final sentence into sculptural form. I engraved the text into the apparatus of civilization—a chair—casting it as a large metal letterpress plate designed to press into flesh.

A chair, ordinarily a foundation for thought, judgment, power, and hierarchy, no longer functions as a tool for humans. It becomes a sculptural subject that presses into the viewer’s body. The human becomes not the sitter but the printing surface upon which the chair inscribes. In this reversal, the hierarchy of civilization quietly inverts.

The mark once pressed into my own skin was documented in the photograph The Blank Impression.

Yet the mark left on the skin does not last; it disappears within minutes. Thought and record lack permanence, and the positions of civilization shift subtly rather than remaining fixed.

The Unsublime Child

The Unsublime Child begins from the fact that human death is first decomposed by gut microbes. Research into solitary deaths—where pets consumed parts of their owners—revealed a moment when beings I considered kin became predators. This extends to the recognition that humans, too, are prey to themselves within the indifferent circulation of nature.

I filmed my microbiota under a microscope and wrote letters to them. Though treated lightly in daily life, these microbes are the future agents of my disassembly.

Beside the video lies the original letter I wrote to my microbes. Visitors may take and swallow an edible letter stored inside a transparent acrylic block resembling a monument. The letter bears only:

“To you who will consume me / From the person who is your home.”

When swallowed, the letter carries the visitor’s own meaning into their gut microbiome. From that moment, the work continues beyond the gallery—the visitor’s body becomes another site of exhibition.

The Swallowing Body

The Swallowing Body collapses the ritualistic structure of The Unsublime Child. All meaning-bearing acts—communication, communion, prophecy, declaration—are reduced to vibration.

Beneath a stainless-steel morgue tray lies a low-frequency hum recorded from my abdomen as I read the letter silently. The tray becomes a resonant body, holding the internal rhythm stripped of language. This vibration is not meant to communicate; only pre-linguistic ruptures and meaningless rhythms remain. The residues of ritual sink into the acoustic foam as a quiet murmur.

The tray rests at the center of a pedestal of acoustic foam. Its weight presses into the foam, whose densely protruding texture evokes intestines or microbial colonies. Visitors may lie upon the tray. The moment one places their body on a device designed to carry the dead, they occupy the position of death.

Hearing is said to be the final sense to remain at the threshold of dying. The vibration transmitted through the tray permeates the body like the faint last sound from the edge of consciousness. It is the recitation I once spoke, now reduced to pure physical wave.

As the body sinks into the foam, the visitor experiences themselves being swallowed. They become not a listener but a being consumed—a swallowing body.

The acoustic foam, originally designed to silence, becomes a living surface that holds resonance, like soil or an organism absorbing death.

Swallowing unfolds on multiple layers: the visitor swallows vibrations; the human body swallows to survive; microbes swallow to decompose; the pedestal object swallows the tray. The Swallowing Body reveals a field of multilayered swallowing traversing the boundaries of subject and object, life and death, human and microbe.

Materials

Aluminum alloy, acrylic, acoustic foam, edible paper, and the morgue tray—each carries the language of industry: durability, transparency, erasure, decomposition, severance. Yet within the work, these materials shift into other dimensions.

Aluminum presses into the body yet leaves only a fleeting inscription. Acrylic becomes a monument of a ritual that is ultimately swallowed. Acoustic foam becomes an inner organ holding resonance. Edible paper becomes a medium of ingestion. The morgue tray becomes an entry point into microbial proliferation and circulation.

Scripture of the Preyed is a record that is simultaneously written, erased, and consumed.

GAIA – Scripture of the Preyed stages consumption, decomposition, fermentation, circulation, and rumination. Humans, microbes, emotions, memories, and acts of creation prey upon one another, dismantling and reviving.

To be eaten by what is within us is both destruction and return—a strange form of love.

I have been chewed endlessly.
And I probably still am.

© Jae-eun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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