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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의 난센스

미술평론가 안소연

 

신재은의 작업을 보면, 익숙한 소재의 낯선 배치가 매번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최근의 개인전 《GAIA-PROLOGUE》(2018,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삼면이 유리와 흰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 공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전시 동선을 구축한 후, 관객의 경험을 조율하는 특유의 서사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광장의 큰길과 인접한 정면의 흰색 쇼윈도 공간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끌만한 검은 바탕의 큰 사진 한 점이 붙여있었다. <cutting a hamburger>(2018)는 제목 그대로 햄버거를 단면이 보이도록 둘로 똑같이 잘라 상하 대칭으로 배열해 놓고 촬영하여 확대 출력한 정물 사진이다. 햄버거 패티 층을 통해 형태 안에 내재된 강렬한 수직적 구조를 극대화한 이 작업은, 형태의 “단일한” 윤곽 아래 축적되어 있는 “다수의” 존재를 향해 우회하여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상이한 시점들을 유도한다. 형태의 윤곽을 그대로 세워둔 채 그 단면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러한 접근은 일련의 대상에 대한 다수의 시점과 우회하는 사고의 흐름을 전제로 한다. 햄버거의 단면이 폭로한 형태의 내부 구조는 시각의 주체로 하여금 이내 예상치 못한 기시감을 촉발시키면서, 전시공간 외벽을 따라 이어지는 수평의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마치 파노라마처럼 또 다른 수직의 단면과 마주하게 한다. <cutting rubber clay>(2018)는 고무찰흙을 색색으로 쌓아 올린 후 가운데를 반듯하게 잘라내 그 수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을 빙 둘러싸고 연쇄적으로 제시된 형태의 수직 단면은, 곧바로 큐브 형태의 전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광장과 분리되어 있는 레지던시 입구 쪽, 그러니까 햄버거의 단면이 보였던 쇼윈도 정면을 기준으로 그와 평행한 후면에 섰을 때 바닥보다 조금 높은 지대에 서서 마주하게 되는 낯선 풍경에서 또 한 번 반복된다.

 

광장에서 단순한 시각적 호기심으로 시작된 전시의 동선은 그 반대편의 알려지지 않은 레지던시 공간의 진입로로 이어지면서, 마치 큐브 형태의 전시 공간이 지닌 그 단면을 폭로하듯 주체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정면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공간의 텅 빈 내부 구조에 자리한 기둥 형태의 구축물은 신재은이 주변에서 퍼 온 흙을 서서히 굳히며 쌓아 올린 인공 지층이다. 햄버거의 단면으로부터 색깔 고무찰흙의 수직 단면을 지나 예상치 않던 건축적 스케일의 육중한 지층을 보게 되었을 때, 그곳은 광장 뒤편으로 우회하는 장소로서 공간의 외피를 벗겨낸 일종의 복잡한 풍경을 시사한다. 더욱이 전시 첫날 지층의 하단에 돼지 몸통을 그대로 끼워놓았다가 이튿날부터 돼지 뼈로 대체해 놓은 이 수직 구조의 내밀한 서사는 단순한 유머와 비판적 메시지 사이를 모호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다. 특히 외부로 개방된 전시 공간의 삼면 쇼윈도 중 전시 동선 상 마지막 순서에 해당하는 자리에는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였다”라는 문장이 흰 벽에 흐릿하게 연필로 적혀있다. 너무 진지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 문장이야말로 어쩌면 신재은의 작업이 제시하고 있는 엉뚱한 상상과 그 이면의 블랙 유머 같은 비판적인 함의를 경계 없이 뭉뚱그려 실체화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신재은은 《GAIA-PROLOGUE》에서 구체적인 형태의 단면들에 주목해온 것처럼 임의의 비물질적인 구조가 지닌 단면/이면에 대한 상상과 접근을 동시에 유도한다. 이를테면, 그는 전시공간을 물리적으로 사이에 두고 요란한 공공의 광장과 적막한 작가들의 개별 스튜디오가 서로 상이한 층위에서 공존 하고 있는 상황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둘 사이를 서로 교묘하게 우회하는 동선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서 양쪽의 시선이 흩어졌다 모여드는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하여 외부와 내부, 공공과 개인, 일상과 예술 등의 간극과 접점을 동시에 아우른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신재은의 작업 면면을 살펴보면, 그는 일련의 상이한 가치들이 충돌하여 뭉개지면서 새롭게 전개되는 우회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도시농업: 네잎클로버>(2012-2018) 시리즈부터 <호황 프로젝트>(2014)나 <애정운 상승 프로젝트>(2015) 시리즈를 보면, 그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교묘하게 흐리면서 둘 사이의 논리와 모순을 동시에 구축한다. 일례로 작가 스스로 작업의 맥락 안에서 네 잎 클로버 협회 부장 안젤라 박사로 분해 지속해 온 네 잎 클로버 시리즈 작업은, 진짜 서사와 가짜 서사가 섞여 신재은의 작업 안에서(만) 유효한 서사의 논리를 마련했다. 현실의 보편적 경험의 결과를 가져와서 일련의 비현실적 과장과 왜곡을 통해 그것을 미묘하게 변형시킴으로써 결국 진짜와 가짜가 혼재한 엉뚱한 서사가 완성되었을 때, 그런 식의 무모한 현실이 그의 작업 환경 안에서 지속적으로 되풀이될 수 있는 논리를 신재은은 내심 즐기는 듯하다. 이를 위해 신재은은 작업의 구조를 나름 체계적으로 구축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보통 현실의 “사건”과 거기서 발췌한 “사물”을 그대로 가져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 중 가장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미를 확대시켜 놓고 그것을 단서 삼아 극대화된 서사와 사건을 새롭게 구성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 그는 약 6년 간 지속해 온 <도시농 업: 네 잎 클로버> 시리즈에서 희귀한 “네 잎 클로버”의 상징과 그것이 과잉 재배되는 현실의 부조리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엮어냈다. 실제로 네잎클로버를 인공적으로 생산· 재배하는 유사-과학적 태도를 과시함으로써 그가 앞으로 구축해 낼 서사에 대한 착시를 교묘하게 다룬다. 더 나아가 그는 일련의 사건과 그에 대한 알리바이들을 엮어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사진 및 보도 자료들을 직접 제작한 후 마치 자신이 구축한 낯선 서사를 도울 객관적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관객들의 진지한 몰입을 유도한다.

 

이처럼, 신재은은 현실의 서사 체계에 기반하여 그것을 살짝 비트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현실의 서사 이면에 기생할 법한 “믿거나 말거나 식의”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이때 그는 대립하는 양가적인 가치들의 공존과 혼란을 모의하면서 진부한 현실의 서사에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한다. 그는 우선, 앞서 언급한 일련의 연작들에서와 같이 인간의 주술적 기복에 바탕을 둔 욕망, 이를테면 “행 운”, “사랑”, “죽음(삶)”, “풍요” 등을 실현시켜 줄 욕망의 대체물로서의 사물에 줄곧 주목해왔다. 신재은은 네 잎 클로버, 인삼, 약, 화폐, 부적 등에 얽힌 현실의 B급 서사와 오래된 관습을 가져와, 그것이 작동하는 초-현실적 논리와 구조를 극단적으로 해석하거나 분석해 현실에서의 자명한 믿음에 대한 “유보”를 이끌어낸다. 이는 그가 실제로 상상한 것을 증거물처럼 눈앞에 공들여 만들어 놓은 현실의 사물들과 또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기능하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연출해 꾸며낸 자료들 이 맞물려 공존하면서 한껏 가중된다. 진짜와 가짜가 계속해서 서로를 전복시키면서 만들어내는 난센스와 같은 상황이다. 농담으로 장난치듯 서사를 풀어내는 그의 가짜 연기는 사뭇 엉뚱하고 가벼운 유머로 관객의 긴장을 늦추어 놓지만, 반면 무모할 정도로 진지하게 구축해 놓은 사물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관객의 시선을 그냥 빠르게 지나칠 수 없이 이 우회적이고 유보된 상황 속에 머뭇거리게 한다. 다시, 최근의 전시 《GAIA-PROLOGUE》 를 떠올려 보면 된다. 신재은은 윈도 전시 공간 내부에다 주변의 흙을 퍼 와서 직접 수직의 지층을 차곡차곡 쌓아 기둥을 만들어 놓고는 그 아래 돼지/뼈를 끼워 넣었다. 이러한 그의 무모한 수고는 햄버거 패티의 단면을 수직으로 드러낸 강렬한 사진 한 장의 위트와 맞물 려 현실의 “저편”에 서늘하게 배어 있는 난센스를 한껏 극대화한다. 

© Jae-eun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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